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삼성·SK·현대차·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향후 5년간 총 800조원 이상의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잇달아 내놓으며 한국 제조업의 대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JFS) 합의로 통상 불확실성이 완화된 가운데, AI·반도체·전기차·조선·배터리 등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전례 없는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17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대미 투자가 너무 강화되면서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도록 잘 조치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국내 투자 확대를 직접 요청했다. 이어 “규제 완화와 해제, 철폐 중 가능한 게 어떤 것인지 지적해주면 신속하게 정리하겠다. 우리 재정이 후순위 채권을 인수해 손실을 먼저 감수하는 방식도 도입할 수 있다”며 규제·재정·R&D 전방위 지원 의지를 밝혔다.

기업 총수들도 국내 투자와 고용 계획을 재확인하며 정부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저희 기업들은 후속 작업에도 차질이 없도록 정부와 적극 협조하겠다"며 "(이 대통령이) 국내 산업 투자가 축소될 걱정을 했는데, 일부에서는 우려가 있겠지만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교역 환경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국내 기업들에도 국내 기업들도 실질적인 경제 성장의 과실을 창출하기 위해서 노력을 계속 하겠다"며 "더 빠른 속도로 AI 데이터 센터와 인프라를 지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후속 절차를 신속히 추진해주는 게 생태계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국내 투자와 협력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환경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된 만큼, 주요 그룹들은 AI·반도체·전기차·소부장 등 사업별 전략 투자를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향후 5년간 국내에 450조원을 투입한다. 특히 평택캠퍼스 2단지 ‘5라인’ 건설을 본격화해 2028년 가동을 목표로 메모리 공급망을 강화한다. 이재용 회장은 “향후 5년간 6만명씩 국내에서 고용하겠다”며 “국내 시설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전남 국가 AI컴퓨팅센터·구미 AI데이터센터 등 비수도권 AI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 양산 준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OLED 라인, 삼성전기 부산 패키지기판 생산 능력 강화 등 그룹 전반으로 투자를 확대한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국내에 128조원을 투자한다. 반도체 수요 증가와 공정 첨단화에 따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가 확대될 전망이며, 최태원 회장은 “용인 팹만으로도 600조원 정도의 투자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SK는 매년 1만4000~2만명 수준의 고용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정부와 함께 8,600억원 규모의 ‘트리니티 팹’을 구축해 소부장·스타트업·학계가 활용하는 개방형 연구·개발 생태계를 만든다. 또한 오픈AI 등과 협력해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건립 방안을 추진하며 국내 AI 인프라 강화에도 나선다.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신사업에만 50조5000억원을 배정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센터, 로봇 완성품·파운드리 공장, 수전해 플랜트 등 미래 제조 생태계를 강화한다. 정의선 회장은 “AR 로봇 수준의 플랜트 등 신사업에서 빠르게 세계 정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차·기아 1차 협력사의 대미 관세를 전액 지원하는 등 공급망 안정화와 지역 생산거점 강화에도 투자가 집중된다.

LG그룹은 향후 5년간 국내에 100조원을 투자하고, 그 중 60조원(60%)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 개발과 확장에 투입한다. 구광모 회장은 “향후 5년간 예정된 100조원의 국내 투자 중 60%를 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과 확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AI 도입 확대를 강조하며 “국내 산업 생태계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산업 전반에 AI를 도입해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엔비디아 GPU 26만 장 확보가 AI 도입과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는 설비 자동화·AI 적용 노하우를 협력사에 전수하는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다.

HD현대는 향후 5년간 15조원을 국내에 투자한다. 이 중 조선·해양 분야 7조원, AI·로봇·기계 등 미래 신사업에 8조원을 배정한다. 글로벌 조선 공급난과 MASGA(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추진에 맞춰 생산 능력과 기술 경쟁력 강화가 핵심이다. 정기선 회장은 “국내 조선해양 산업 클러스터에서 AI 기반 스마트 조선소를 구축하고, 중소 기자재 업체 경쟁력 강화까지 동반성장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HD현대는 미국 조선 산업 재건 참여와 병행해 국내 기술 내재화와 디지털 조선소 구축을 병행한다.

한화그룹은 향후 5년간 11조원을 국내 조선·방산 분야에 투자한다. 옥포조선소 확장과 첨단 함정·무기체계 생산 라인 업그레이드가 핵심이며, MASGA 협력에 발맞춘 국내 기술력·생산 능력 향상이 목적이다. 여승주 부회장은 “국내 조선·방산 분야에서 2024년 9조원이던 협력 업체 매출을 2030년 21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한화는 조선·방산 공급망 강화를 위해 국내 협력사 생산역량 확대와 고부가 기자재 국산화를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이번 800조원대 투자의 특징은 대규모 사업이 수도권 외 지역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삼성의 광주·전남·부산·아산·구미, SK의 영남·서남권, 현대차의 울산·전주·대구·경주·아산, LG와 조선업계의 충남·경남 등 전국에 클러스터가 확산된다. 이에 반도체·AI·조선·배터리·바이오 등 핵심 산업의 지역별 분산 투자는 인구·고용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 경제의 활력을 높이고 균형 발전을 촉진할 전망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17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이번 800조원 규모 투자 발표에 대해 “이번에는 한미 관세 협상 이후 투자 발표라서 실질적인 것도 있다”며 “어쨌든 이번 투자가 AI 대전환 시대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 관전포인트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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