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34년 동안 유지돼 온 ‘정년 60세’가 2033년까지 65세로 단계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의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고령자 고용제도 개편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기업 인건비 증가와 청년고용 축소 우려가 겹치며 노사·세대 간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 분위기다.
1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 정보를 종합해보면 제22대 국회에 제출된 고령자고용법 개정안 다수는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올리고, 임금체계 개편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특히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안은 법 공포 6개월 후 시행, 이후 △2027년까지 63세 △2032년까지 64세 △2033년 이후 65세로 단계 인상하는 안이 대표적이다.
법안이 내년 초 통과될 경우 빠르면 2025년 말∼2026년 초부터 정년 63세 적용이 현실화된다. 일부 여당 의원안은 기업 규모별 차등 적용을 제안하고 있으나, 여러 법안을 종합하면 늦어도 2030~2033년 사이에는 전 사업장에 정년 65세가 일률 적용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수렴하는 모습이다.
정년연장에 대한 경영계의 반발은 거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11일 발표한 입장에서 “정년연장은 노조가 있는 대기업 또는 공공부문 정규직에만 법정 정년 연장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년 60세 의무화의 실질적 혜택도 20% 남짓의 일부 근로자에게만 집중됐으며, 주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이 혜택을 향유했다”고 주장했다.
청년고용에 대한 우려도 강하게 제기했다. 경총은 정년 65세 연장 시 기업 부담이 연간 30조2000억 원, 이는 “25~29세 청년층 90만2000명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일본처럼 기존 근로계약 종료 후 재고용 방식을 도입하고,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한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정년연장 논의가 거세지는 가운데 중견기업의 선택은 ‘정년연장’이 아닌 ‘퇴직 후 재고용’에 기울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발표한 ‘중견기업 계속 고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62.1%가 고령자 계속 고용 방식으로 ‘퇴직 후 재고용’을 선택했다. 정년연장은 33.1%, 정년폐지는 4.7%에 불과했다. 조사에는 매출 500억 원 이상 중견기업 2507곳 중 169곳이 참여했다.
법정 정년을 넘긴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고 있는 기업도 절반 이상(52.6%)에 달했으며, 이 중 69.6%가 재고용 방식을 채택했다. 재고용 이유(복수응답)는 △전문성·노하우 활용(84.2%) △신규채용 어려움(24.7%) △기업의 사회적 책임(20.2%) 순이었다.
재고용 근로자의 임금은 정년 대비 △90% 수준(31.4%) △80% 수준(23.6%) △100% 이상(31.4%)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는 정년 이후 임금이 대체로 60% 수준으로 떨어지는 일본과는 차이가 있는 지점이다.
정년 65세 연장 시 부담 요소로는 △인건비 증가(64.5%) △청년 신규채용 여력 감소(59.7%) △조직 인사 적체(41.4%)가 꼽혔다. 89.3%의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호준 중견련 상근부회장은 “중견기업의 ‘퇴직 후 재고용’ 인력 운용 현황에서 보듯 숙련된 고령자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반면, 현장의 수요와 괴리된 일률적인 정년 연장은 인건비 부담 가중 등으로 오히려 기업 펀더멘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정적인 정년 연장이 아닌 전직 및 재취업 교육 확대, 노인 복지 강화 등 사회 정책을 폭넓게 아우르는 실효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해외 주요국들 상황은 어떨까. 가까운 일본과 싱가포르의 경우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정년·재고용·임금 구조를 복합적으로 조합하는 다층형 모델을 정착시켰다.
경기도일자리재단이 올해 8월에 발표한 '일본과 싱가포르의 계속고용제 비교를 통한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두 나라의 접근법은 노동시장 환경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단계적·복수 경로 고용연장’을 택하고 있다.
일본은 정년을 60세로 유지하되 기업에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정년연장·정년폐지·재고용 중 택1)를 의무화했다. 2024년 기준 99.9%의 기업이 65세까지 고용을 보장, 이 중 67%는 재고용을 선택한다. 재고용자는 1년 단위 계약을 반복하는 구조다.
또 일본은 2021년부터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 노력 의무화 단계로 진입했다. 기업은 고령자에게 일을 제공하되, 임금·직무 조정은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싱가포르는 정년을 2030년까지 65세로 올리고, 재고용 의무는 70세까지로 설정했다. 특히 노사정이 참여하는 삼자협의(Tripartite)를 통해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재고용이 어려운 경우 기업은 고용지원금(EAP, 2~3.5개월분 급여)을 지급해야 하며, 직무·임금 조정은 허용하지만 처우 악화를 방지하는 장치가 촘촘히 마련돼 있다. 이 같은 구조 덕분에 싱가포르는 고령층 취업률이 OECD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정년 논의는 ‘60세 → 65세’라는 숫자 인상에 집중돼 있지만, 해외사례와 중견기업 현실은 정년연장만으로는 고령자·청년·기업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임박한 한국에서, 정년제 논의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구조개혁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