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재와 음극재를 구성하는 다양한 광물들.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양극재와 음극재를 구성하는 다양한 광물들.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이코리아] 지난 3월 6일부터 8일까지 국내 최대 규모의 배터리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2024'와 'EV Trend Korea 2024'가 코엑스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코엑스에 따르면 전 세계 18개국 579개 배터리 업체가 1,896개의 부스를 꾸렸고 무려 12만명의 참관객이 전시회를 찾았다고 한다.

전기차에 대한 수요의 감소로 2차전지사업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전시장에서는 입장권을 얻기 위하여 실제로 30분 이상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파우치형 배터리를 제조하는 설비.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파우치형 배터리를 제조하는 설비.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한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포스코홀딩스, 에코프로비엠, 고려아연 등이 모두 전시회에 부스를 꾸몄다.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원료물질을 공급하는 브라질업체나 전고체전지를 만드는 스페인업체 등 외국계 제조기업들의 참가도 돋보였다. 

LG에너지 솔루션은 지난해 1조374억원, 삼성SDI는 1조1364억원, SK온은 3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2차전지 분야 연구개발비로 집행했다. 한국계 배터리 연구기관이나 제조업체들을 자국에 적극 유치하려는 외국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의 홍보전쟁도 뜨겁게 이어졌다.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2차전지 제조의 시작은 리튬, 망간, 코발트, 니켈과 같은 광물들의 개발로 시작된다. 이 광물 중 리튬과 코발트는 특별히 비싼 광물이다. 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리튬은 라틴아메리카의 삼각형 지역인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리튬 채굴은 가난한 후진국인 볼리비아의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채굴과정에서 발생한 폐수는 토양을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재활용으로 회수가능한 탄산리튬, 황산니켈, 황산코발트. 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재활용으로 회수가능한 탄산리튬, 황산니켈, 황산코발트. 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선진국의 쾌적한 환경을 위한 전기차생산에 후진국의 환경이 크게 훼손되는 다양한 희생이 뒤따른다. 코발트는 현재 콩고와 인도네시아, 호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콩고에서의 코발트의 채굴은 한때 강대국 식민지였던 콩고의 과거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잊혀 가지만 과거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2세는 콩고에서 코코아 등 자원을 수확하기 위하여 무려 76년간 약탈과 인종차별, 폭력을 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수확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성인과 아동들은 손발이 잘렸다. 

한 손이 잘리고 할당량을 못 채운 콩고인들은 두 손이 잘렸고, 두 손이 모두 잘린 사람은 이내 죽임을 당했다. 벨기에 국왕 필리프는 지금부터 2년 전인 2022년 콩고를 방문하여 깊은 유감을 표시했지만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다.

볼리비아는 현재 귀한 리튬을 가장 많이 보유했지만, 가공기술이 없어 원광석 형태로 리튬을 수출한다. 리튬은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가공되고, 결국 위 국가들이 2차전지로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주기율표의 3번째에 있는 리튬은 자연계 원자들이 바깥쪽 첫번째 고리에 단지 2개의 전자만을 보유하려는 특성 때문에 매우 쉽게 산화되고 가장 높은 환원력을 나타낸다.

리튬 등 원광석의 분쇄에는 턱이나 로터, 강철공이나 세라믹볼 등이 사용된다. 분쇄된 광석은 산성용액이나 알칼리용액, 유기용매에서 침출된 후 다양한 금속이온으로 정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온이 녹아있는 용액은 침전과정을 거친 후 금속이 회수되며 건조 및 제련과정을 거치며 순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자성을 활용한 자원회수 설비. 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자성을 활용한 자원회수 설비. 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일반적으로 2차전지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품은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과 전해액으로 분류된다. 앞서 설명한 니켈, 코발트, 망간 즉 ‘MCN혼합물’은 적절히 섞여서 전구체를 이룬다.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전구체는 양극재를 구성하는 중간단계 물질인 셈이다.

2차전지에 사용되는 활물질은 원광석에 추출되지만, 재활용이나 재사용으로 확보되기도 한다. 이러한 공정에서는 후진국이 겪는 환경오염이나 아동노동의 부작용은 덜하다. 다만, 균일하지 못한 순도는 때로는 배터리의 화재나 폭발로 이어진다.

이러한 위험성을 가지는 2차전지의 특성 때문에 이번 전시회에도 화재를 예방하는 다양한 기술이 소개되었다. ESS에 가스관을 삽입하여 화재를 예방하는 방법, 높은 온도의 고온에도 녹지 않는 플라스틱, 가스의 발생으로 압력이 높아지면 자동으로 고압가스가 배출되는 장치, 산소의 공급을 제한하여 폭발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부품 등 다양한 첨단기술이 참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편 에너지밀도는 높으면서도 앞서 언급한 폭발 위험이 낮은 '꿈의 배터리' 또는 '게임체인저'라고 불리는 전고체배터리도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다. 삼성SDI는 2027년, SK온은 2029년,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을 대량 생산을 목표로 제시했다. 한국정부와 이들 회사는 전고체전지의 기술개발을 위해 2028년까지 모두 1,172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현재의 이차전지는 채굴이 어려운 리튬을 사용하지만, 바닷물에 무한하게 존재하는 나트륨을 리튬으로 대체한 ‘나트륨배터리’도 개발되었다. 이 배터리는 저렴하지만 리튬이 가지는 높은 에너지밀도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트륨배터리는 향후 10년간 매년 40%씩 생산량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3년 후부터 우리들의 스마트폰과 전기청소기,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재질이 점차 변경될지 모른다.

한편 블랙매스는 2차전지의 재활용과정에서 생산되는데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들이 서로 섞여 있는 물질을 의미한다. 분쇄된 블랙메스 중 니켈과 코발트는 강한 자석을 이용하여 쉽게 분리되며, 그 후 침출, 정제, 농축, 건조과정을 거쳐서 매우 값비싼 황산코발트로 추출된다. 블랙매스의 일부는 유사한 과정을 거쳐 매우 비싼 탄산리튬으로 변모한다.

에코프로, 성일하이텍, 동서IS 등 한국의 재활용업체들은 추출된 활물질들을 혼합하여 CDS전구체 등으로 가공한다. 이 업체들은 그 후 전구체에 탄소나노튜브 등의 다양한 도전재를 결합한다. 전구체는 양극재로 가는 중간단계인데, 만약 전구체에 황을 추가하면 전체 무게가 가벼워진 리튬황배터리로 제조된다. 이 리튬황배터리는 일반적인 리튬이온배터리보다 가벼워 드론이나 도심항공 모빌리티(UAM)에도 활용된다.

한국은 위에서 설명한 니켈, 망간, 코발트로 전구체를 제조하지만, 중국은 리튬인산철을 주재료로 전구체를 만든다. 중국이 만드는 리튬인산철배터리의 기술수준은 한국보다 낮지만, 2020년 16%에 불과했던 중국의 전체 배터리시장 점유율은 2022년 2배를 넘는 38%로 급성장했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켜진 빨간 불을 보고 부랴부랴 500억원 이상을 급히 투자하기로 하고, 시장 수성의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재활용업체는 제조된 전구체에 도전재를 혼합하고, 가교제도 첨가한다. 가교제는 활물질 분해를 방지하고 전기전도도를 향상시킨다. 가교제의 첨가 이후 별도의 열처리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리고, 앞에서 등장한 활물질, 도전재, 가교제 등이 모두 결합한 물질은 다소 생소하지만 슬러리로 불린다.

한편 천연흑연은 주로 2차전지의 음극재로 사용된다. 이 물질도 첨가제와 섞여서 고온에서 별도의 열처리과정을 거친다. 만약 제조사가 음극재인 흑연 대신 다른 금속을 사용한다면 전체적인 에너지밀도를 높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배터리는 ‘리튬메탈배터리’로 불리며 벌써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배터리화재를 대비한 운송장비.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배터리화재를 대비한 운송장비.사진=여정현 필자 제공.

 

한편 앞에서 설명한 슬러리는 집전체와 결합하여 최종적으로 양극과 음극이란 전극을 구성한다. 다양하게 코팅된 양극재와 음극재를 구성하는 전극은 건조와 압연을 통하여 에너지밀도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우리 스마트폰에 현재 사용하는 리튬이온전지의 이론적인 최대 에너지밀도는 kg당 350Wh 수준이나 이미 320Wh의 밀도에 도달했으므로 추가적인 성능개선은 어렵다.

양극 및 음극은 분리막과 결합되고 전해질이 주입되어 다양한 캔형이나 파우치형태로 제조된다. 셀이나 팩은 전동공구, 전기차나 ESS 등 최종적인 고객의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포장된다.

배터리 모듈들은 이후 충방전을 거쳐 안정화되고 검사를 거쳐 최종 소비자들에게 출하된다. 완성된 전지는 전기차나 전기오토바이, 휴대폰에 탑재되어 거리를 누비거나, 서로를 연결해 주는 소중한 역할을 담당한다.

다양한 2차전지를 생산하는 한국의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중국과 아직은 3~5년간의 기술격차가 있다. 그런데 중국의 추격이 심상치 않다. 필자는 지난달 중국 전기차의 메카인 선전(Shenzhen)을 방문했는데 모든 택시가 이미 전기차였고, 오토바이의 대부분도 전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선전 시내 곳곳에 산재한 다수의 전기차 충전소도 한국 주유소의 3~4배로 상당히 큰 편이었다. 선전의 전기차업체 BYD는 작년 300만대의 전기차를 팔아서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1위의 전기차기업으로 괄목하게 성장했다.

무려 12만명의 관람객이 첨단 배터리제조 기술에 열광했던 2024년 '인터배터리'와 'EV트래드 코리아 전시회'는 이제 막을 내렸다. 전시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은 다가오는 6월 독일 뮌헨, 7월 도쿄, 9월 킨텍스나 미국 등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한국을 먹여 살릴 2차전지란 성장동력을 굳건히 하기 위하여 오늘도 한국의 여러 기업체는 광물을 개발하고, 에너지밀도를 높이며,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 소개] 여정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안양대 평생교육원 강사, 국회사무처 비서관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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