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개요. 자료=한국은행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개요. 자료=한국은행

[이코리아]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이 국내 금융권의 기후위기 대응 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나섰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지난 28일 15개 금융회사와 공동으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 금융사는 KB·신한·하나·우리·NH·대구·부산은행 등 7개 은행과 삼성·교보·한화·신한생명 등 생명보험사 4곳, 삼성화재·현대해성·KB손보·코리안리 등 손보사 4곳이다.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는 저탄소 전환 및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기후변화 대응 비용이 발생해 거시경제 여건 및 기업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결국 금융회사의 여신·투자 손실로 이어지는 과정을 계량화한 기후리스크 측정 수단이다. 

한은과 금감원은 탄소중립 정책 및 기후변화 전망을 반영한 기후 시나리오를 개발해 금융사에 배포할 계획이다. 금융사는 시나리오별로 기업의 탄소배출 정보 등을 활용해 대출·투자 등의 손실이 금융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 뒤, 해당 결과를 한은·금감원의 자체 테스트 결과와 비교해 신뢰도를 더욱 높인다. 금융사는 테스트 결과를 녹색 익스포져 비중 확대 등 저탄소 전환계획 수립 및 이행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한은과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기후리스크 대응 능력을 점검하는 이유는, 기후변화가 실질적으로 금융권의 수익성·건전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전부터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보험업계에서는 이미 기후 관련 손실 규모를 추정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이뤄졌다. 실제 영국 보험사 로이드(Lloyd’s)는 지난 2014년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 관련 손해액이 1980년대에는 연간 500억 달러 수준이었으나 최근 10년간 20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 또한 지난 2021년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급증하는 자연재해를 보험사의 핵심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금융권의 취약성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시나리오를 구성해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유럽의 주요 중앙은행들은 자국 내 금융사들과 함께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시행·발표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지난 2022년 5월, 영국 내 가계·기업 여신의 70%와 생명·손해보험 자산 60~65%를 보유한 은행 7곳 및 보험사 12곳을 대상으로 시행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영란은행은 오는 2050년까지 30년간 기후변화가 금융시스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조기대응·지연대응·무대응 등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측정했는데, 금융권이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연평균 수익의 10~15%가 감소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은행부문의 경우, 지연·무대응 시나리오에서 조기대응 시나리오보다 손실 규모가 30% 이상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부문에서는 무대응 시 보유자산의 시장가치가 15% 이상 하락하고 손보사 연평균 손실이 50~70% 증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영란은행은 해당 손실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충격이 동반된다면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커질 위험이 있다고 봤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서두를수록 저탄소 전환 및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이 줄어든다는 결론이 나온 만큼, 탄소집약 산업에 대한 익스포져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등 금융사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2022년 7월 104개 유로지역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유로지역 은행 중 약 60%가 기후위험을 자체 스트레스 테스트 체계에 완전히 통합하지 않고 있었으며, 20%만이 대출 업무에 기후위험을 고려하고 있었다. 또한 유로지역 은행의 기업고객 대상 수익 중 65%는 22개 온실가스 집약산업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처럼 금융사가 기후위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탄소집약적 산업에 계속 자금을 조달한다면, 장기적으로 금융권이 입는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 ECB는 가뭄·폭염·홍수 등 물리적 리스크와 높은 저탄소 전환 비용 등을 가정할 때 유로지역 내 41개 은행의 전체 신용 및 시장손실이 약 70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ECB는 데이터 부족 및 모델링의 한계, 경기하강 위험 등을 감안할 때 해당 추정치는 실제 기후 관련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중앙은행(BdF)과 금융감독청(ACPR)도 지난 2021년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프랑스 내 은행 자산 85%를 보유한 9개 은행 및 15개 보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해당 테스트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사의 위험 비용은 코로나19 기간 금융사가 부담한 비용보다 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은과 금감원은 올해 상반기 중 기후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하반기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기후변화가 금융사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처음 실행되는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드러날 국내 금융권의 기후위기 대응 현주소는 과연 어디쯤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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