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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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디지털 금융이 일상화되면서 서버장애 및 접속오류 등 ‘테크리스크’(Tech Risk)가 금융권의 중요한 위험관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반복된 전산오류로 인해 증권사를 향한 투자자 불만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영업 중인 증권사 59곳에 대해 투자자들이 제기한 민원은 총 2만303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7186건)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해 증권사 중 가장 많은 민원이 발생한 곳은 DB금융투자로 전체 민원의 62%에 달하는 1만4910건을 기록했다. 전체 민원의 대부분인 1만3813건이 1분기에 발생했는데, 이는 지난해 3월 DB금투가 단독 주관한 바이오인프라의 상장 당일 일어난 전산장애 때문으로 보인다. 바이오인프라 상장 첫날인 지난해 3월 2일 오전 투자자들이 몰려 오전 9시부터 9시 30분까지 약 30분간 DB금투 MTS에 접속 오류가 발생한 것. 실제 DB금투 지난해 1분기 민원 중 10건을 제외한 1만3803건은 모두 전산장애로 인한 민원이다. 

매년 반복된 전산장애는 국내 증권가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권 전체가 직면한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금융이 일상화되면서 외부 해킹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노후화 및 자연재해로 인한 서비스 중단, 접속량 증가에 따른 시스템 오류, 운영인력의 실수에 따른 프로그램 오류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22일 발표한 ‘글로벌 금융회사의 테크리스크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3대 은행 중 하나인 미즈호은행의 경우 지난 2002년부터 2021년까지 ATM 작동 정지, 해외송금 지연, 온라인뱅킹 중단, 로그인 오류 등 다양한 전산장애로 고객 불편을 초래한 바 있다. 특히 2021년에는 1년간 무려 8차례나 전산장애가 발생해 고객의 신뢰가 크게 하락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미즈호은행이 오랜 기간 테크리스크에 노출된 것은 시스템 통합·교체의 필요성에 대한 경영진의 의사결정 지연, 시스템 유지·보수 전문인력 부족, 미흡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위기대응계획) 등이 혼합돼 발생한 필연적 결과”라고 지적했다. 반복된 전산장애로 미즈호은행은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20년간 4차례의 업무 개선 명령을 받았고, 이후 각종 후속조치를 시행해야 했다.

실제 미즈호은행은 약 200항목으로 구성된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하는 한편, 2021년 120명의 IT 인력을 추가 고용하고 실무자의 권한을 강화해 선조치 후보고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3년간 1500억엔을 들여 메인시스템 미노리(MINORI)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시스템 관련 예산 95억엔 및 전산장애 대응 예산 130억엔을 별도 편성하는 등 관련 투자도 확대했다.

 

국내 증권사의 전산운용비 증가 추이. 자료=금융투자협회
국내 증권사의 전산운용비 증가 추이. 자료=금융투자협회

국내 증권사들도 전산장애 예방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가 지난해 사용한 전산운용비는 8583억원으로 전년 대비 8.3% 늘어났다. 지난 2019년 5368억원이었던 전산운용비는 2020년 8.1%, 2021년 14.9%, 2022년 18.9% 등 매년 늘어나 곧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도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전산장애 관련 과태료 내부실무기준을 개정했다. 특히 기존 ‘포괄 부과’ 방식에서 ‘건별 부과’ 방식으로 과태료 부과 방식을 바꾸면서 금융사가 부담해야 할 과태료 수준이 크게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개정된 기준에 따라 금융사가 전산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비상통제 계획 및 인프라 구축을 충실히 했는지 검토할 계획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디지털 채널 기반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테크리스크를 ‘제로’(Zero)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실효성 있는 컨틴전시 플랜 마련, 명확한 책임소재 설정, 철저한 품질관리 및 테스트 강화로 테크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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