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금융감독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금융감독원

[이코리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 항셍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와 관련해 일괄 배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안에 따라 배상비율이 차등화될 수 있다는 설명에 일부 투자자 및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과거 저희가 경험이 많이 쌓이지 않았을 때는 일률적으로 배상비율을 권고했다”라며 “지금은 그보다는 연령층, 투자경험, 투자목적, 창구에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등 수십 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떤 경우에 소비자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은행·증권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사실상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분들을 상대로 이런 상품을 판 경우, 해당 법률행위 자체에 대한 취소 사유가 될 여지가 있다”라며 “그런 경우에는 100% 내지 그에 준하는 배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어 “(차등 배상이 원칙이며) 일괄 배상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며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라 배상이 아예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홍콩H지수 ELS 재가입자에 대해서는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2020~2021년 가입한 상품들인데, 2016~2017년에도 홍콩H지수가 급락해 넉인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2015년에 했다가 2020년에 재투자한 사람의 경우에도 2017년에 발생한 상황을 적절히 설명해야 한다”라며 “은행·증권사가 과거 수익률이나 위험을 적절히 고지했다면 책임을 상당히 면할 수 있고, 없었다면 원칙에 따라 적절한 배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지수 ELS피해자모임과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회원들이 15일 서울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사태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콩지수 ELS피해자모임과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회원들이 15일 서울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사태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콩 ELS 투자자들은 차등 배상이 원칙이라는 이 원장의 발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 낮은 배상비율이 적용되거나 배상기준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홍콩H지수 관련 ELS 가입자 모임(피해자)’ 카페에서는 “서명한 것을 빌미삼아 0% 배상안이 나오는 것 아니냐”, “서류상 문제를 발견하기도 어려울 텐데, 0%가 가능하다는 것은 금감원이 은행 편을 들겠다는 것”, “재가입자를 두 번 죽이는 결정” 등 차등 배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다. 

금융정의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또한 지난 6일 공동 논평을 내고 차등 배상 원칙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온라인과 증권사를 통해 가입했다거나 재가입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판매과정에서 판매사의 불법적인 판매행위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며 “이에 대해 일률적으로 배상기준에서 제외하거나 차등을 두는 방식은 홍콩 ELS 피해자들의 구체적·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금융소비자에 대한 폭넓은 피해구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금감원의 홍콩 ELS 현장조사 결과를 통해 과도한 수익목표를 설정해 리스크관리 내규를 어겨가며 판매한도를 5조원대로 올린 점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이복현 금감원장은 일괄배상은 없다고 못박은 셈”이라며 “이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DLF사태 때보다 심각하게 후퇴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금감원은 배상 기준안을 마련하면서 일반적인 공통 배상 기준(고위험 상품 등)과 함께 구체적·개별적 사정을 고려하는 개별적 배상 기준도 마련하는 합리적인 배상 기준안을 제시해야 한다”라며 “ELS의 투자자 보호 강화 등 조건부 판매 허용 조건을 위반한 판매사의 가중책임을 물어 피해자들에게 즉각적이고 충분한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금감원의 면밀하고도 신중한 검토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감원은 오는 11일 홍콩H지수 ELS 손실 사태와 관련해 책임분담기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감원이 차등 배상을 둘러싼 반발을 진화하고 피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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