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주주환원 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장사를 거래소에서 퇴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페널티를 뺏다는 금융위원회의 입장과 엇갈리는 발언인 만큼 시장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상장 기업도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거래소 퇴출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오랜 기간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하거나, 재무지표가 나쁘거나, 인수합병(M&A)의 수단이 되는 기업들이 계속 시장에 남아있도록 그냥 두는 게 맞는지 차원의 문제”라며 “시장에) ‘악화’(惡貨)가 계속 있는 동안에는 우수 기업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어렵다. 성장 동력을 가진 스타트업 등에 돈이 갈 수 있도록 옥석 가리기가 명확히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어 “주주환원 관련 특정 지표를 만들어, 그 지표에 미달한 경우에 대한 논의가 연구 단계에서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걸리는 페널티와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미흡한 주주환원 ▲부진한 성장 ▲부실한 재무건전성 등의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을 거래소에서 퇴출할 수도 있다는 발언은 사실상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게을리한 기업에 대한 제재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원장의 발언은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맹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것인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 금융위가 지난 26일 공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는 상장사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세정지원, 우수기업 표창 등의 인센티브가 포함된 반면, 상장사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강제할 수 있는 페널티는 빠져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27일 브리핑에서 “지금 프로그램의 제일 큰 특징의 하나가 인센티브는 많이 있는데 페널티가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기업의 가치 제고를 하려면 본인들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페널티를 많이 주게 되면 형식적으로만 할 것”이라며 “본인들이 진정하게 느껴서 해야 한다는 측면이에서 페널티는 일단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페널티 없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자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강제성 없는 프로그램에 상장사가 굳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6일 “세부안 중 가장 중점적으로 볼 부분은 금융당국이 상장기업에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책을 강제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만약 기업 자율에 맡기는 권고 형태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꾸려진다면 (밸류업 기대로 주가가 오른 업종에서) 차익매물이 나올 공산이 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원장이 주주환원 기준에 미치지 못한 상장사의 퇴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이 전해지면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대한 기대감도 다시 높아지는 모양새다. 실제 코스피는 지난 26~27일 2거래일간 연속 하락하며 발표 직전인 23일(2667.70) 대비 42.65포인트(△1.6%)나 하락했으나, 이 원장의 발언이 전해진 28일 다시 27.24포인트(1.04%) 오르며 2652.29로 장을 마감했다. 

다만 페널티 추가 여부만으로 당장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참고 사례인 일본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증시 부양을 위해 기업지배구조 및 증시 체질 개선 노력을 다각적으로 전개해왔다. 지난 2014년에는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일본 공적연금(GPIF)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2015년부터는 기업지배구조 공시를 의무화했다. 2019년에는 상호출자 정보 공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개정했다. 

이러한 장기간의 체질개선 노력뿐만 아니라 유리한 거시경제 환경도 일본 증시 부양을 도왔다. 장기간의 마이너스 정책금리와 엔저 현상으로 인해 일본 기업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일본 증시로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된 것. 이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단기간에 해결될 과제가 아니라며 중장기적인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에서 “기업 밸류업은 어떤 한두 가지 조치로  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 투자자 정부가 함께 중 장기적인 시계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과제”라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긴 호흡으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켜봐 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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