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개최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개최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코리아]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연초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열풍을 몰고 온 핵심 요인인 만큼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컸지만, 정작 윤곽이 드러나자 시장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한국거래소 마켓스퀘어 컨퍼런스홀에서 한국거래소, 자본연구원, 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과 함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의견수렴을 위한 1차 세미나’를 열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운영방안을 공개했다. 

정부는 코스피·코스닥의 모든 상장사가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마련해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상장사는 ▲자본비용·자본수익성·지배구조 등을 파악해 현재 기업가치가 적정 수준인지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3년 이상 중장기 목표 및 도달 시점, 구체적 달성 계획 등을 수립한 뒤 ▲계획 이행 및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한 평가 및 주주와의 소통·피트백 결과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은 연 1회 상장사 홈페이지 및 거래소를 통해 공시되며, 2년차부터는 전년도 계획·이행 평가를 포함해 공개해야 한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성과를 낸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 표창’을 신설하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이행 및 주주와의 소통 노력 등을 평가해 매년 5월 10개 상장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표창을 받은 상장사에 대해서는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등의 세정지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한 기업가치가 우수한 상장사 및 기업가치 제고가 기대되는 상장사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도 개발할 방침이다. 기업 밸류업 표창을 받은 상장사의 경우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 심사에서 우대를 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해당 지수가 ETF 펀드 등 “금융상품 출시에 활용될 수 있고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도 벤치마크 지표로 참고·활용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3분기까지 지수 개발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 강제성 없고 인센티브 모호, ‘밸류업’ 회의론 확산

연초 ‘저PBR’ 관련주 열풍을 불러온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공개됐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금융당국이 참고한 일본의 사례에 비해 강제성은 부족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은 지난해 3월 PBR 1배 이하 상장사를 대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및 구체적 이행 목표를 공시하도록 요구했다. 의무사항은 아니었지만, 2026년까지 PBR 1배를 넘어서지 못한 상장사의 경우 상장폐지도 가능하다고 경고하는 등 사실상 상장사의 참여를 강제했다. 

반면 이번에 발표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충실히 계획을 수립·이행하지 않거나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상장사에 대한 페널티가 빠져있다. 강제성 없는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상장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6일 보고서를 통해 “세부안 중 가장 중점적으로 볼 부분은 금융당국이 상장기업에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책을 강제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일본처럼 PBR 1배 달성을 위한 방안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 밸류업 기대로 주가가 오른 업종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그러나 만약 기업 자율에 맡기는 권고 형태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꾸려진다면 차익매물이 나올 공산이 크다.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 논의 이후로 한국 증시에 대규모로 들어온 외국인이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센티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개된 인센티브는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부가·법인세 경정청구 우대, 가업승계 컨설팅 등의 세정지원 정도다. 게다가 해당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매년 10개의 기업가치 우수 상장사뿐이다. 

반면, 배당 확대에 따른 세액공제나 법인세 감면 등 발표 전 기업들이 기대했던 내용은 포함되지 못했다. 세제지원의 경우 “다양한 세제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 뿐 구체적인 내용은 빠졌다. 

이 때문에 국내 증시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오히려 하락세를 타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23일 2667.70에서 금융위가 1차 세미나를 연 26일 이후 2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27일 2625.05로 42.65포인트(△1.6%) 하락했다.

다만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인 만큼 단기적으로 일희일비할 문제는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어차피 4월 총선 이전에 정책 모멘텀은 힘이 빠지게 마련이며, 당장 세법 상법을 뜯어고치기도 어렵다”라며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진심이라는 것은 확인했으니, 이제는 정부가 보여준 로드맵을 따라가는 장기적인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PBR만 낮다고 테마주처럼 오른 주식은 제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재평가받은 저PER 고배당 주식이 다시 내려갈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라며 “이제는 중소형주에서도 주주환원에 진심인 기업의 재평가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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