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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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비트코인이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국내 허용을 두고 야당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가운데 정부·여당의 고심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 민주당, “비트코인 현물 ETF 국내 거래 허용할 것”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1일 ‘제22대 총선 디지털자산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의 디지털자산 공약에는 가상자산 업권법 제정 및 통합감시시스템 설치, 가상자산 관련 제도 및 투자환경 정비, 증권형토큰(STO) 법제화를 비롯해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허용 등의 내용이 담겼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기존 선물 ETF와 달리 롤오버(Rollover) 비용이 없고 비트코인 가격과의 괴리율이 낮은데다 운용보수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운용사가 실제로 비트코인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지수조작 위험이 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는 다수의 금융사가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법원이 SEC에게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거부 결정을 재검토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결국 SEC도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다수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 ETF·ETN 등을 포괄하는 개념)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날부터 이달 20일까지 10개 비트코인 현물 ETF 유입된 자금 규모만 약 50억 2천만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시장에도 자금이 유입되면서, SEC 발표 전날 4만 달러대 초반을 오갔던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 5만 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 금융위, “비트코인 현물 ETF, 자본시장법 위배”

문제는 국내에서는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를 거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11일 “국내 증권사가 해외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의 정부 입장 및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 국내 거래를 금지한 것은 아직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이 구체적으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4조 10항은 기초자산을 ▲금융투자상품 ▲통화 ▲농축수산물, 광산물, 에너지 등 일반상품 ▲신용위험 ▲그 밖에 자연적·환경적·경제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으로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해 가격·이자율·지표·단위의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이 가운데 어느 항목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거래를 허용한다면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수밖에 없다. 

물론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ETF'는 별개의 상품이므로, 가상자산이 기초자산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는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비트코인을 기초자산 분류 항목 중 마지막 카테고리에 포함시킬 수 있단 반론도 나온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우선 금융당국과 상의한 뒤, 당국의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경우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출시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 600만 코인 투자자 표심 잡기, 당정 망설이는 이유는?

민주당이 비트코인 현물 ETF 국내 허용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내달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해 발표한 가상자산 사업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 수는 606만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체 유권자 수의 약 14%에 달하는 규모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로 투자자 수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관련 이슈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적극적으로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 잡기에 나선 야당과 달리 정부·여당은 장고를 거듭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도 곧 비트코인 현물 ETF 관련 공약을 발표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으나, 국민의힘은 “학계, 업계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여러 정책 제안을 받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라고 밝혔다. 

당정이 비트코인 현물 ETF 국내 허용과 관련해 신중론을 유지하는 것은 최근 추진 중인 증시 부양 정책에 자칫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매도 전면 중단,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 추진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중개를 허용할 경우 증시 자금이 대거 가상자산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코스피는 26일 2647.08로 장을 마감했는데, 이는 연초(2669.81) 대비 22.73포인트(△0.9%) 하락한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증시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증시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투자자예탁금 또한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달 2일 59조4949억원에서 지난 23일 53조4207억원으로 6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증시 자금이 비트코인 ETF로 이동한다면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은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 가상자산 투자자의 표심을 잡으려다 자칫 주식투자자의 표심이 떠날 위험도 있다는 것. 

물론 당정이 비트코인 현물 ETF 국내 허용에 동의한다고 해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자본시장법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운용사는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해야 하는 만큼, 현재는 제한된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도 허용해야 한다. 

한편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산하 코빗리서치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쏟아지는 가상자산 선거 공약들이 선거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라며 “전 세계 가상자산 산업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이미 7년이라는 세월을 글로벌 경쟁력 개선 없이 허비했다. 지금부터라도 이를 만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여야가 제안한 각종 공약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이행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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