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 진열된 과일 선물세트의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7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 진열된 과일 선물세트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金(금)사과’라는 표현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사과 가격 오름세가 계속되고 있다. 차례상에 사과 몇 알을 올려두기도 부담스러워졌다는 한탄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나라 사과 가격이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포털사이트 등에서 ‘사과 가격’을 검색하면, 한국 사과 가격이 전 세계에서 1위에 올랐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러한 기사는 모두 ‘넘베오’(Numbeo)라는 웹사이트를 인용하고 있다.

넘베오는 전 세계 물가를 비교할 수 있는 통계 웹사이트로, 사과 등의 식료품은 물론 스포츠·레저·교통·통신비는 물론 아파트 매매·임대 비용을 비롯해 전반적인 생활비용까지 국가·도시별로 알아볼 수 있다. 

넘베오에서 ‘국가간 비교’ 페이지로 들어가 품목 선택 탭에서 ‘사과(1㎏)’을 고르면 94개국의 사과 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넘베오에 따르면 한국의 사과 1㎏ 가격은 6.77달러로 94개국 중 가장 비쌌다. 2위는 스리랑카(6.27달러)였으며, 그 뒤는 미국(5.32달러), 자메이카(5.28달러), 베네수엘라(4.68달러) 등의 순이었다. 94개국 평균은 2.34달러로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가별 사과 1kg당 가격.(단위: 달러) 자료=넘베오
국가별 사과 1kg당 가격.(단위: 달러) 자료=넘베오

◇ ‘넘베오’의 사과 물과 비교 자료, 신뢰할 수 있을까?

다만 “한국의 사과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넘베오의 자료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있다. 넘베오는 개별 국가의 민간·공공 데이터를 수집해 품목별 물가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웹사이트 방문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물가를 산출하고 있다. 실제 넘베오에서 ‘도시 물가 업데이트’(Update data for your city) 항목으로 들어간 뒤 국가를 선택하면, 거주 중인 도시를 비롯해 각종 품목의 가격을 입력할 수 있는 페이지가 나온다. 

문제는 이렇게 입력된 값이 실제 물가를 반영하는지 허위인지 넘베오가 검증하느냐다. 넘베오는 수집된 데이터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30개 이상의 필터(알고리즘)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참여자의 사용행태 및 과거 입력값 등을 통해 입력된 정보의 통계적 적합성 여부를 판별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넘베오는 입력값 중 상·하위 25%를 제외해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입력값으로 인해 괴리율이 커지는 문제를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넘베오 스스로 인정하듯이 더 많은 데이터가 누적될 수록 더 좋은 자정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으면 허위정보를 걸러내는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넘베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한국 물가와 관련해 307명이 2571개의 자료를 입력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9812명), 일본(453명) 등도 인구 규모에 비해 물가 입력에 참여한 사용자의 수가 많지 않다. 307명이 입력한 자료만으로 넘베오가 산출한 수치가 한국의 물가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넘베오의 신뢰성은 과거에도 국내 언론을 통해 지적받은 바 있다. 실제 KBS는 지난 2020년 넘베오를 근거로 “지난 3년간 서울 집값 상승률은 44%로 전 세계 1위”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넘베오의 자료 수집 방식 등을 지적하며 신뢰성이 높지 않다고 비판했다. 

당시 KBS는 ▲넘베오의 한국 아파트값은 전적으로 네티즌이 입력한 정보에 의존하며 ▲도심·비도심의 구분이 불명확하고 ▲아파트값과 관련된 공공·민간 데이터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넘베오의 조사 결과를 보조자료 이상으로 완전히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근 1년간 넘베오에 한국 물가 관련 데이터를 입력한 사용자는 총 307명으로 집계됐다. 사진=넘베오 웹사이트 갈무리
최근 1년간 넘베오에 한국 물가 관련 데이터를 입력한 사용자는 총 307명으로 집계됐다. 사진=넘베오 웹사이트 갈무리

◇ 기후변화·수입장벽으로 사과값 오름세 지속

물론, 넘베오 자료를 근거로 한국 사과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주장이 확산하는 이유는 실제 사과 가격이 급격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사과(후지) 10개의 평균 소매가격은 19일 기준 2만9338원으로 한 달 전(2만7440원)보다 1898원(6.9%), 1년 전(2만3058원)보다 6280원(27.2%)이나 올랐다. 지난해 기후변화로 인한 사과 생산량이 급감한 데다, 수입 금지 품목으로 지정돼 단기간에 공급을 늘리기 어려워  올가을까지는 가격 상승세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정부도 과일 가격 안정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19일 농식품 수급상황 확대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해 생산 감소 및 일조 부족 등 기상 영향으로 사과·배 등 과일류와 시설채소의 가격은 높은 상황”이라며 “참외 등 대체 과일이 본격 출하되는 5월 전까지 166억원을 투입해 사과·배 중심으로 할인을 지속 지원하고 물가 가중치가 높아 가계 부담이 큰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한우·한돈 자조금을 통해 할인행사를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증결과: 판단유보. 넘베오의 물가 데이터는 객관적인 민간·공공데이터가 아니라 사용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수집되는 만큼 허위정보가 반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넘베오 또한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허위 정보를 걸러낸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지난 1년간 넘베오에 한국 물가 관련 데이터를 입력한 참여자는 307명에 불과해 충분한 데이터가 누적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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