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2024년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2024년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이코리아]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판매사의 배상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손실 규모나 배상기준에 따라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이 수조원 규모의 배상금을 지불할 수도 있는 만큼 수익성 악화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2024년 금감원 업무계획 브리핑’ 기자간담회에서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의 자체 배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손실액의) 최소 50%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원장은 ELS 손실 관련 자체 배상은 횡재세 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자체 배상안을 마련하지 못한 금융사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4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이달 내 금융사와 소비자 간 손실을 배분하는 분쟁 배상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공적 절차와 별개로 금융사들이 검사 결과에 따라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할 수 있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문제가 된 홍콩H지수 ELS는 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금융상품으로, 해당 지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지만, 기준 이하로 하락하거나 만기 때까지 회복되지 않으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2021년 1만2000대까지 올랐던 홍콩H지수는 중국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최근 5000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중 올해 들어 지난 2일까지 만기가 돌아온 것은 총 7061억원인데, 이 가운데 고객이 돌려받은 상환액은 3313억원으로 손실률이 53.1%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상반기 손실률이 60%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ELS는 총 15.4조원으로 이 가운데 10.2조원의 만기가 상반기에 돌아온다. 만약 H지수가 반등하지 못하고 현재의 부진을 이어갈 경우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 은행 측의 불완전판매 혐의가 인정될 경우 은행도 투자자에 대한 배상에 나서야 한다. 실제 이 원장은 “금융사들이 (불완전판매 혐의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라고 밝힌 데다 자체 배상에 나설 것을 당부하고 있는 만큼 판매 은행들이 배상 책임을 완전이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 발생한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경우 40~80%의 배상비율이 책정됐는데, 80%의 경우 투자 경험이 없는 79세 치매 환자에게 판매한 경우였다. 실제 DLF 투자자들이 배상받은 금액은 2349억원으로 전체 손실액(4024억원의) 58.4%였다. 이와 비슷한 수준의 배상비율이 적용된다면 판매 은행들은 수조원대의 배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홍콩H지수 ELS 사태로 인해 은행의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가 중단된 것도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자이익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당면 과제인 은행에게 있어 ELS 판매수수료는 쏠쏠한 비이자이익 원천이었다. 실제 5대 은행이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ELS 판매수수료를 통해 벌어들인 이익은 총 6815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ELS 손실 우려가 확산되면서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ELS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대출증가세 둔화 및 금리 인하 전망 등으로 이자이익 축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ELS 사태로 인한 금융투자상품 판매 중단까지 겹치면서 시중은행은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ELS 관련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은 지키되,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등 확인 시 엄정대응 및 합당한 피해구제가 가능할 수 있도록 배상기준 마련 등 신속한 분쟁조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고위험 금융상품 관련 판매 및 운영 등 전반적 관리체계의 개선과 판매규제 실효성 제고 등 소비자보호 강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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