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지난 23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남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했다. 오후 1시25분께 한 위원장이 먼저 도착해 소방인력을 격려했다. 약 15분 후인 1시40분께 윤 대통령도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민방위옷을 착용한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오자 90도로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한 의원장을 포옹한 후 악수를 나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약 20분간 머문 뒤 현장을 떠났다. 윤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일부 상인들은 “대통령이 사진만 찍고 갔다”며 항의해 소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이 주목한 것은 두 사람의 갈등 해소 문제였다. 갈등은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공개적으로 지적했고, 이에 한 위원장이 “국민들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일부 보조를 맞추면서 시작됐다.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고가 정점으로 치달았다. 한 위원장의 ‘폴더인사’가 하루종일 화제가 됐다. 이 만남으로 현재 갈등은 잦아들었다. 

지난 18일에도 인사와 관련한 해프닝이 있었다.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 참석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악수하면서 발언을 하자, 대통령경호처 경호 요원들이 강 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퇴장시켜 여야가 갈등을 겪었다. 강 의원은 윤 대통령과 악수하는 과정에서 “국정 기조를 바꿔달라고 했을 뿐인데 경호원들이 사지를 들어 자신을 끌어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강 의원이 악수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대통령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며 강 의원의 행동을 ‘경호상 위해 행위’로 판단해 퇴장 조치했다고 말했다. 

인사는 만나는 사람이 서로의 안녕을 묻고 답하는 의식(儀式)이다. 인사에 대한 특별한 관례는 없으나 서로 편하면서도 정중하게 상태를 향해 자신의 예의를 표시하면 된다. 미워하거나 갈등하는 사이일지라도 인사하는 순간만큼은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인사할 때는 자신을 낮춰야 한다. 자신을 높이려고 으쓱거리는 건 인사가 아니다. 너무 낮추면 비굴해 보인다. 이런 예의를 벗어나면 신사(gentleman)·숙녀(lady)의 대우를 받기 어렵다.

인사 중에서 우리가 가장 편하게 접하게 되는 것이 조각가 유영호의 작품 ‘Greeting Man·인사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리팅맨은 15도로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한국식으로 인사하는 알몸 남성의 모습을 푸른색(스카이블루) 알루미늄 주물로 만든 6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이다. 인사를 통해 나라 간의 경계를 허물고 문화, 인종 간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2012년 10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국의 양구와 연천, 파나마시티, 에콰도르 카얌베의 적도선과 과야킬, 뉴욕의 뉴저지, 브라질 상파울루, 멕시코 메리다, 판문점 등 여러 곳에 세워졌다. 한국과 가장 먼 곳에서 시작해 세계로 확산시키겠다는 생각에서 맨 처음 우루과이를 선택했다. ‘인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팅맨을 설치하는 것은 지구촌 분쟁지역에 소통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몬테비데오에 작품을 설치할 당시에는 현지 반응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설치된 광장이 ‘대한민국 광장’으로 불리고, 관광 안내책자의 첫 장에 실릴 만큼 지역의 명물이 됐다. ‘그리팅맨’을 보는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공손하게 인사를 받는 건 흐뭇한 일이기 때문이다. 공손하고 절제된 인사를 받으면 마음이 힐링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작가는 독일 유학 시절 그리팅맨을 시작했다. 독일에서 인사하는 형상작업을 처음 시도했는데, 네덜란드의 유명작가 행크 피쉬가 그의 작업을 보고 말했다. 

 “처음 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치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인사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인사는 관계를 형성하는 시작 포인트다.” 

 이때부터 유씨는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가장 겸손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 고개를 10도, 20도, 30도 등 수백 번 모델을 만들어서 관찰했다. 너무 숙이면 가식적이고,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 나왔다. 그 결과 얻은 것이 15도 각도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자신을 잃지 않은 상태가 15도였다.

알몸으로 만든 것은 알몸이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옷은 계급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머리카락도 없는 알몸으로 만들었다. 작가는 “인사는 만남과 존중, 경의와 경외, 화해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세계의 의미 있는 장소에 1000개의 그리팅맨을 세우고 싶어 한다. 인사는 무조건 숙이는 게 아니라 자존감을 가지면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겸손은 비굴함이 아니다. 자기반성의 의미도 있다. 

문화·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사람을 억압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한 문화·예술을 제외한 다른 것은 사람을 억압한다. 돈이나 물질, 계급이나 권력은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을 억압하고 인간을 주눅 들게 한다. 이념조차도 그것을 표방하거나 강조하는 순간에 그 반대의 이념을 가진 사람을 억압한다. 

우리 사회는 갈등이 너무 많다. 이념 갈등은 몇십년째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파기환송심에서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문화의 순수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켜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임순만 언론인 (작가·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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