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블라인드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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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한국전력공사가 직원들에게 ‘임금 반납 동의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전 부채는 정책 실패의 결과인데도 직원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23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전이 직원들에게 임금 반납 동의서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관련 글을 작성한 한전 직원은 “한전은 망했다. 앞으로 한전이 아닌 한국반납공사라고 불러달라”라며 “희망퇴직금을 직원 돈 십시일반해서 만드는 회사”라고 말했다. 

한전이 직원들에게 임금 반납 동의서를 받는 이유는 희망퇴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앞서 한전은 지난해 11월 추가 자구안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8본부 36처의 본부 조직을 6본부 29처로 20% 축소하고 지난 2010년 이후 13년 만의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인력조정안도 포함됐다.

한전은 2급 이상 간부의 임금 인상 반납분을 희망퇴직 위로금 재원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수십억원에 불과한 반납분만으로는 이를 충당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한전은 총인건비 외에 추가로 필요한 희망퇴직 지원금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반납 대상을 4급 이하 직원까지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업 임직원이 임금을 반납한 것은 한전만의 사례는 아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 2020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및 장·차관급 공무원이 고통분담을 위해 임금 반납에 나서면서 다수의 공기업도 이에 동참한 바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지역경제 살리기 및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정재훈 전 사장을 비롯한 본부장급 임원이 4개월간 월 급여의 30%를 반납했으며, 처·실장급 및 부장급 직원도 일정 범위 내에서 금액을 정해 임금 반납에 동참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연구개발(R&D) 전담 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또한 기관장이 4개월 간 30%의 급여를 반납헀으며,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국토정보공사(LX)도 사장 등 임원진 4명이 같은 내용으로 임금 반납에 동참했다.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도 이사장 포함 임원진 급여 30% 반납에 나섰다. 

한국전력 또한 과거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임직원의 임금 인상분을 반납한 적이 있다. 지난 2008년에는 한전 및 자회사 과장 이상 간부직원 약 1만1000명이 임금인상분 전액인 220억원을 반납했다. 한전은 같은 해 글로벌 금융위기 및 연료비 상승 등으로 2조7980억원의 역대급 적자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에도 한전의 임금 반납은 계속됐다. 2013~2014년에는 대규모 적자 문제로 인해 부장급 이상 임직원이 임금 인상분 전액을 반납했고, 지난 2022년에도 정승일 전 한전 사장 및 1급 이상 주요 간부들이 성과급 반납을 결정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임직원의 임금 반납이 이뤄졌다.

이처럼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임금 반납은 한전뿐만 아니라 공기업의 오랜 관행 중 하나다. 문제는 직원들의 임금 반납이 경영위기 타개에 도움이 되느냐다. 한전은 지난 2021년 역대 최대 규모인 32.6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한전 임직원 1~3급 임직원이 총 5000명, 1인당 평균 성과급이 679만원임을 고려하면 성과급 전액 반환에 따른 재무개선 효과는 약 340억원으로 적자의 0.1%에 불과하다. 

공기업의 경영위기에는 정부의 정책실패, 외부 환경 변화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도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조원이 넘는 막대한 한전 부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방만 경영’이 아니라 ‘연료비 급등’이다. 코로나19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연료비가 급등했지만, 전기요금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한전의 적자도 누적됐다. 

한전 실적은 국제 유가와 밀접하게 연동돼있는데,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면 경영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 연료비가 안정되고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하자 한전은 지난해 3분기 1조996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로 전환했다. 적자의 원인이 따로 있는데도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반발 또한 거세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임금 반납은 경영진 및 임원급을 대상으로 했던 과거와 달리 4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 임금 반납은 직원 자율에 맡긴다고 하지만 회사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점도 한전 직원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블라인드에 임금 반납 관련 글을 올린 한전 직원은 “전 직원이 약 50~60만원의 임금을 반납할 예정”이라며 “고과 불이익 등을 언급해서 동의율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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