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 치매환자 수 추이.(단위: 명) 자료=중앙치매센터
추정 치매환자 수 추이.(단위: 명) 자료=중앙치매센터

[이코리아] 치매 환자와 간병 가족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치매 환자에 대한 돌봄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치매 환자는 물론 이를 돌보는 가족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대구 달서구에서는 치매를 앓던 80대 아버지와 그를 돌보던 5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아버지는 지난 2016년 치매 판정을 받았으며, 아들이 이후 8년간 아버지를 돌봐왔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 가정이 아닌 데다 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기록도 없었다. 이 때문에 아들은 국가 및 지자체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아버지를 돌보며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치매 돌봄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해 5월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2’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2112만원으로 연간 평균 가구소득(5570만원)의 49.5%를 차지한다. 

게다가 치매 정도가 심할 경우 관리비용은 최경도 환자 대비 2배 이상 늘어난다. 가구소득의 최소 절반 이상, 심하면  전부를 치매 환자 간병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치매 환자 간병에 드는 신체·심리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치매 환자도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지난 2021년 기준 89만2002명으로 전체 노인인구(857만7830명)의 10.4%를 차지했다. 중앙치매센터는 치매 환자 수가 지난해 100만명을 돌파해 오는 2030년 142만명, 2040년 226만명, 2050년 315만명, 2060년 346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치매국가책임제, 돌봄 공백은?

우리 정부도 이미 치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치매국가책임제’를 지난 2017년부터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치매국가책임제’는 ‘문재인 케어’의 대표적 복지정책으로 치매로 인한 고통과 부담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이후 전국 256개 시군구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돼 간호사·사회복지사 등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지원팀이 치매 진단 및 예방, 관리 등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중증 치매 환자는 산정 특례 적용시 건강보험을 90%까지 적용하고, 신경인지검사와 MRI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도록 해 의료비 부담도 낮췄다. 2018년부터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인지지원등급’을 신설해 경증치매도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치매 조기 진단, 의료비 부담 경감 등의 효과를 봤지만, 돌봄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자마다 다른 돌봄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전문인력이 부족한 데다. 방문 요양 및 주간보호센터 등도 이용시간에 제한이 있기 때문. 17일 대구 달서구에서 사망한 치매 환자도 지자체가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에도 등록돼 있지 않아, 제대로 된 돌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치매국가책임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참여연대는 지난 2021년 성명을 내고 “(치매국가책임제로 인해) 인프라와 서비스가 늘어나고 부담이 좀 줄어들긴 해서 혜택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기는 했겠지만 그러한 혜택을 찾아내고 얻어내는 것은 여전히 당사자와 가족의 몫”이라며 “말로는 국가가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책임의 주체가 없는, 그냥 구호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 日, 범정부 차원의 국가전략으로 치매정책 추진

일각에서는 해외의 치매 대책을 참고해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범정부 차원에서 치매 가족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사례로 꼽힌다. 

보험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일본 치매정책의 현황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1989년 골드플랜을 시작으로 1994년 신골드플랜, 2000년 골드플랜21, 2012년 오렌지플랜, 2015년 신오렌지플랜, 2019년 인지증시책추진대강 등 일련의 치매정책을 수립해 치매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2012년 오렌지플랜부터는 치매정책이 후생노동성뿐만 아니라 내각부·경찰청·금융청 등 12개 부처가 관여하는 범정부 차원의 국가전략으로 격상됐다. 

일본 치매정책의 특징은 정책의 초점이 치매 환자 중심에서 간병가족 중심으로 점차 전환됐다는 것이다. 실제 오렌지플랜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치매 환자가 살던 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가족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인지증(치매) 지역지원추진원’을 설치해 지역 의료·돌봄기관이 치매 환자·가족을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치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치매 가족을 외부에서 지원하는 ‘인지증 서포터’ 육성에도 나섰는데 2017년 800만명을 증원을 목표로 한 이 계획은 1000만명 이상의 지원자를 모집하며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또한, 치매 환자·가족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인지증 카페’도 2017년 기준 5863개까지 늘어났다. 인지증 카페는 단순히 치매 환자·가족을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서 지역사회의 치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역 주민과 치매 환자·가족이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인지증 고령자 등에게 좋은 지역은 결코 인지증 환자에게만 좋은 지역이 아니다”라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서로 돕는 커뮤니티 연결이야말로 그 기반이며 인지증 고령자 등 친화적인 지역 만들기를 통해 지역을 재생한다는 관점도 중요하다”고 치매정책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류건식 RMI 경영연구소 연구위원과 손성동 부소장은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은 치매의 사회적・경제적 영향을 고려해 다양한 치매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어 우리에게 주는 정책적 시사점은 그 어느 나라보다 크다”라며 “범정부 차원의 국가전략으로 치매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역포괄 케어시스템을 도입하여 지역 생활권 중심으로 치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일본의 치매정책이 환자 중심에서 환자가족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지역생활 위주로 보건・의료・복지의 복합화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치매정책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며 “환자는 지역에 있고 의료의 출구는 복지의 입구이기에 지역의 의료와 복지가 체계적으로 제공될 때 치매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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