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중랑구의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인 모아타운에서 열린 도심 주택공급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중랑구의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인 모아타운에서 열린 도심 주택공급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은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도 재건축 절차에 들어가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제도 변화를 예고해 새해엔 재건축 문턱이 대폭 낮아질 전망이다.

2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서울시 중랑구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모아타운) 현장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재개발·재건축의 착수 기준을 노후성으로 완전히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근본적인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은 “주택과 주거는 민생에 가장 중요한 분야이고, 과거에 불합리하고 과도한 규제로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다”며 우리 정부가 시장을 왜곡시키는 많은 규제를 정상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 주택의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노후화됐고, 특히 저층 주거지의 경우는 35년 이상 된 주택이 절반에 가까워 주민들의 불편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사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서 모아타운과 같이 소규모 도시정비 사업의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며 “새집을 찾아서 도시 외곽으로 갈 것이 아니라 직장 가까운 도시 내에 집을 구해서 살 수 있도록 생활환경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주거복지의 첫 번째 원칙은 국민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며, “정부는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가로막는 조직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쉽게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원하는 바가 속도감 있게 실현될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깊이 관심 가지고 주거 문제를 지켜보겠다”며 “불필요한 규제는 앞장서서 과감히 쳐 내겠다”고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인데, 재건축·재개발 사업 착수 기준을 노후성으로 바꿀 경우 달라지는 것은 뭘까. 

현재는 재건축과 재개발을 추진하려면 준공 후 30년이 지나고 주택 안전진단부터 받아 '안전이 위험한' 수준인 D나 E 등급을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조합을 만드는 등 정식 재건축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5년간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65건에 그쳤으나, 현 정부에서는 올해만 160건 넘게 안전진단 통과 사례가 나왔다.

규제가 완화되면 일단 재건축 조합을 만들고, 추후 절차를 밟으며 안전진단을 진행할 수 있게 해 사업 속도를 더욱 높일 전망이다. 재건축 조합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진단이 이뤄지다 보니 주민들이 무리한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도 해결한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정부는 큰 틀에서 앞으로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은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재건축 절차에 추진할 수 있게 시행령 또는 법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주택 재개발 진행을 위한 주민 동의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재개발 규제 역시 대폭 완화되는데, 구체적으로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신용 보증을 해주는 방식으로 재개발 비용을 낮춰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PF) 악화로 안전한 사업장까지 자금 조달 금리가 올라가며 금융비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신용을 보강해주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노후도나 주민 동의 등 재개발 요건 완화 방안도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제도 개편안은 내년 1월 중에 발표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규제 완화책이 우선 노후주택이 많은 서울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울은 현재 아파트 185만호 가운데 30년 이상 된 아파트는 37만호(20%)로, 제도 개편 시 서울 아파트 5채 중 1채가량은 혜택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서울에선 노후화가 심한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이고 아파트 뿐 아니라 다세대나 연립 주택 재건축 사업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해 사업 소요기간 단축과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내년에도 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규제 완화가 즉각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칠 지는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때문에 시장가 등 즉각적인 영향보다는 재개발·재건축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얼어붙은 주택 시장에 공급 시그널을 보낸다는 의미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26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현재 착공 물량도 줄고 당장 주택 공급 부족에 대해 시장에선 걱정이 많다. 3개 신도시도 현실적인 대규모 입주는 2030년이 되어야 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서울에선 재개발·재건축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원자재 값 상승 등으로 주택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심 내 공급을 늘리는 방법은 노후주택 정비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어 “노후도시 특별법과 연관해 그 일환으로 규제를 완화해서 속도감 있게 진행하자는 정책으로 도심 내 공급의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일면 획기적인 면도 있다”라면서 “(주택시장이) 당장 큰 영향은 받진 않겠지만 내년 말이나 내후년에 실수요 및 투자 거래 증가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재개발·재건축의 착수기준을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바꾼다는 논의를 꺼내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즉각 시장가격에 반영도 어렵고, 또 주택 시장이 침체기라 바로 가격 급등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향후 수 십 년은 정비사업의 시대이나 국지적·지역적 양극화가 더욱 심하게 적용될 걸로 보인다”면서 “특히 재건축 사업은 인허가 외에도 추가 분담금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사업 속도 차이에 있어서도 지역별, 단지별로 달라질 수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착수기준이 변경되더라도 1기 신도시 특별법처럼 용적률 상향(=일반 분양분 물량) 등의 인센티브가 각 단지별로 얼마나 적용되는지는 아직 미정이다. 이에 막연하게 미래가치를 기대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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