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파두 사태로 기술특례상장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주관사 책임을 강화하는 개선안을 내놨지만, 실적 부풀리기를 막기는 어렵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지난 8월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반도체 설계전문업체 파두는 최근 2~3분기 매출액이 각각 5900만원, 3억2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파두는 상장 전 제출한 투자설명서에서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약 177억원에 달한다며, 연간 매출액을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1203억원으로 추정했다. 

파두의 성장 잠재력을 기대하며 공모청약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실제 파두 주가는 3분기 실적이 공개된 지난 9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14일 한때 공모가(3만1000원)의 절반 수준인 1만6250원까지 떨어져 52주 최저가를 갈아치웠다. 

일각에서는 파두 사태로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다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특례상장은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해 성장 잠재력이 크지만 당장의 수익성은 부족한 기업들에게 상장 요건을 완화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에는 ▲첨단 기술기업에 대한 기술평가를 2회에서 1회로 축소하고 ▲사업성 외 사유로 상장에 실패한 기업이 6개월 내 재도전하는 경우 ‘신속심사제도’를 적용하는 등 관련 규제를 더욱 완화하기도 했다. 

문제는 완화된 규제 문턱을 넘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이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파두의 경우, 투자설명서에 제시한 연간 매출액 추정치(1203억원) 대비 실제 3분기 누적 매출액(180억원)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선보인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술성장기업은 총 32개인데, 이 가운데 투자설명서에 제시한 연간 매출액 추정치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찾기는 어렵다.

탄소나노튜브전문업체 제이오의 경우 투자설명서에 제시한 연간 매출 추정치(1058억원) 대비 3분기 누적 매출액(829억원) 비율이 78.4%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제이오를 제외한 나머지 기술성장기업의 경우 대부분 연간 매출 추정치 대비 3분기 누적 매출액 비율이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실적과 추정치 간의 괴리가 커지면서 미래 이익을 추정하는 역할을 맡은 주관사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파두 기업공개(IPO) 당시 대표주관사였던 NH투자증권은 과거에도 과도한 실적 추정치를 제시해 공모가를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올해 NH투자증권이 대표주관사를 맡은 또 다른 기술성장기업 지아이이노베이션의 투자설명서에는 2023년 연간 매출액이 109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제시돼있다. 하지만 지아이이노베이션의 3분기 기준 누적 영업수익은 6억원으로 연간 추정치의 5.4%에 불과하다. 

NH투자증권이 지난해 대표주관사를 맡은 기술성장기업들도 마찬가지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루닛·에이프릴바이오·SAMG엔터 등 3개사의 대표주관사를 맡았는데, 이 가운데 루닛와 SAMG엔터의 경우 지난해 연간 매출액 추정치 대비 실제 매출액 비율이 각각 67%, 82%에 그쳤다.

바이오 신약 개발업체 에이프릴바이오의 지난해 연간 매출액 추정치는 184억원이었으나, 실제 매출액은 2억원에 그쳤다. NH투자증권은 에이프릴바이오가 올해 매출액 195억원, 연간 순손실 3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해당 업체의 3분기 누적 순손실은 이미 83억원에 달한다. 

물론 기술특례상장은 보유 기술의 혁신성과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중시한 제도인 만큼, 당장의 실적 부진으로 기업의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만큼 미래 실적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거품이 낄 위험도 크다. IPO 주관업무를 맡은 증권사 입장에서는 공모가를 높일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실적 부풀리기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술특례상장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한국거래소는 지난 17일 최근 3년 이내 상장 주선한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조기 부실화되는 경우, 해당 주관사가 추후 기술특례상장 주선 시 풋백옵션 등 추가조건을 부과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거래소가 제시한 개선안도 주관사의 실적 부풀리기 시도를 사전 방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실화 기준은 상장 후 2년 이내 관리·투자환기 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로, 파두 사태처럼 실적과 추정치 간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 사례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편, 법무법인 한누리는 지난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2분기 매출이 사실상 제로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2023년 8월 7일 상장 절차를 강행한 파두 및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주관증권사를 상대로 증권관련집단소송을 제기할 방침을 세우고 피해주주 모집에 나섰다”고 밝혔다. 파두 사태로 불거진 기술특례상장 관련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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