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정부가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전의 재무 위기가 한계에 다다랐단 판단 때문인데, 다만 일반 가정과 자영업자 전기는 동결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한다. 

8일 한국전력은 9일부터 '산업용(을)' 요금을 평균 10.6원/kWh(킬로와트시) 인상한다고 밝혔다. 산업용(을) 요금제는 광업·제조업 및 기타 사업에 전력을 사용하는 대용량 고객으로, 전체 전력 사용가구의 0.2%(약 4만2천호)에 해당한다. 지난해 기준 전력사용량은 총 사용량(54만7933GWh)의 48.9%를 차지한다. 

한전 측은 "시설규모 등에 따라 요금부담 여력을 고려해 전압별 세부인상폭을 차등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산업용(을) 고압A는 6.7원/kWh 인상, 그 외 산업용(을) 고압B·C는 13.5원/kWh 인상하기로 했다. 더 큰 사업장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다. 

난방수요가 느는 겨울이 코앞인데다, 전체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려도 한전의 재무 여건 개선효과가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안에서 중소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갑)은 동결됐다. 업계 관계자는 "열이나 모터 사용이 많은 영세 사출기업들의 경우 에너지비용 부담이 늘면 줄도산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국제 연료 가격의 폭등으로 올 상반기에만 8조50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이미 80조 원어치의 채권을 발행해 2021년부터 쌓인 적자를 메우고 있고, 총 부채는 200조 원을 넘어섰다. 전기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전은 이달 10일 3분기 실적을 공개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의 3분기 흑자전환이 유력함에도 최근 원자재 가격 급변 등 불확실성 가중으로 향후 실적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자본은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당장 올해의 사채발행한도 소진 이슈는 무난하게 넘어가더라도 2024년에 자본확충 수단으로서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재무구조 악화를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전기요금 정상화라는 점에서 빠른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근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또 산업용 요금제에 해당하는 산업은 우리 경제의 주축이라 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은 대표적 전력 다소비 산업이다. 향후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8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디스플레이의 경우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 경쟁국인 중국에 반사이익을 더 많이 줄 가능성이 명백하다. 전체 산업군 영향력으로 따지면 디스플레이보다 산업용 전기요금 1위인 반도체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전력은 이날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해 조직 축소와 인력 효율화 등을 담은 대책도 발표했다. 

2001년 발전사 분사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을 단행해 8본부 36처를 6본부 29처로 개편하고 유사조직을 통합, 비핵심기능은 폐지할 계획이다.

소규모 지사는 인근 거점 지사로 통합함으로써 사업소를 거점화해 업무 효율성은 높인다는 방침이다.

또 연말까지 초과된 정원 488명을 조기 해소하고, 디지털 서비스 확대와 설비관리 자동화를 통해 2026년까지 운영인력 700명을 추가 감축할 계획이다.

앞으로 원전수출 추진,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이행으로 필요한 800명 상당의 인력은 증원 없이 본사와 사업소의 조직 효율화를 통해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희망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2직급 이상 임직원은 내년도 임금인상 반납액을 위로금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인재개발원과 한전이 보유하는 KDN 지분 중 20%, 필리핀 태양광사업자 칼라타칸의 보유지분 전량도 매각하기로 했다.

또 사내대출 금리 인상과 주택자금 한도 축소를 이미 시행했고, 간부직의 임금인상분이 확정되는 대로 반납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은 "한전의 재무위기는 기업으로서 버티기 어려운 재무적 한계치에 도달했다"며 "조기 경영정상화, 모든 역량을 쏟아 추진하여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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