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장관 공식 엑스닷컴 갈무리 
출처=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장관 공식 엑스닷컴 갈무리 

[이코리아] 미국 상무부가 자국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의 중국 내 설비 확장 제한 기준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업계는 이번 최종안 발표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일단 안도감을 표시하고 있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2일(현지시간) 반도체법 상 보조금 등 투자 인센티브를 수령하는 기업의 중국 등 우려대상국 내 설비확장 및 기술협력을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의 최종안을 공고했다. 

최종안은 생산능력 확장과 관련해 보조금 수령시점부터 10년간 웨이퍼 기준 5% 이하 확장만 허용된다. 다만, 28나노 이전 세대와 같은 일정 사양 이하의 레거시(범용) 반도체 생산설비 중 △기존 설비는 10% 미만까지 확장이 허용되며, △동 설비에서 생산된 반도체의 85%가 중국 내수용 최종 제품으로 활용될 경우, 확장 규모의 제한은 없다. 

기술협력과 관련해 우려대상기관과의 국가안보상 민감 기술·품목에 대한 공동연구 및 기술 라이센싱을 제한하나, 국가안보 우려가 없는 활동은 예외가 적용된다. 또 기존에 진행 중인 연구도 상무부와 협의해서 진행이 가능하다. 

이를 위반했을 시 보조금을 환수하겠다는 것인데, 390억 달러(약 52조 원)이 넘는 반도체 보조금 혜택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걸 막겠다는 취지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규정이 확정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는 제한이 생겼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정부가 올해 3월에 발표한 초안에 비교해서 크게 나빠진 점이 없다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판단이 나오는 근거다. 

미 상무부는 이번 가드레일 규정에서 생산능력 확장 범위를 '클린룸 또는 기타 물리적 공간의 추가와 연계해 생산능력을 5% 이상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 업계에선 이를 사실상 공정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규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초안에 있었던 10만 달러(약 1억3000만원) 이상 중국 투자 제한이 빠지는 등 일부 기준도 완화됐다. 

업계에선 반도체 생산능력의 정의가 월별 웨이퍼 수에서 연간 웨이퍼 수로 바뀐 것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업황에 따라 시기별 생산량이 유동적인데, 기준이 연간으로 바뀌며 한국 반도체 업계의 요구가 일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지난 5월 첨단반도체 제한을 5%에서 10%로 늘려달라는 한국 정부와 업계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수십조원을 들여 투자한 중국 공장의 생산능력 확대 등 신규 투자가 사실상 제한되면서 두 기업의 반도체 생산전략 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는 일단 "안보 우려가 없는 정상 경영활동은 보장될 것"으로 평가했다. 안보와 직결된 첨단 영역과 일상적 기업 활동은 분리한다는 미국 측 기존 방침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지난 3일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이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첨단 인공지능(AI) 칩을 절대 팔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과 사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 관심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년 유예를 적용받고 있는 첨단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 규제 문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자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제조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외국계 기업은 1년간 한시적 통제를 유예했고, 추가 유예 결정이 필요해 한·미 양국이 협상 중이다.

미 상무부가 조만간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예외 관련 검토 결과를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사업을 원하는 우리 기업에 우호적 결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한국을 찾은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은 지난 21일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내 반입 금지 조치와 관련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합법적인 사업은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여전히 일정 주기로 수출 통제 유예를 받아야 하는 리스크가 지속되고, 중장기적으로 대규모 투자나 확장이 어렵다는 것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사업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업계는 기업별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 등을 기반으로 반도체법상 인센티브 규모와 가드레일 조항을 고려해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반도체보조금을 신청 작업을 완료했으며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전체 낸드의 36%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중국 투자액을 축소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왔다. 삼성전자의 2022년 중국 투자액은 22억 달러 수준으로, 2021년 대비 60%나 줄어들었다. 

또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를 조성하고 20년 동안 3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국내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에서 D램의 39%, 중국 다롄에서 낸드플래시의 18%를 생산하고 있어 삼성전자보다 중국 공장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이에 중국에 더 많은 투자한 SK하이닉스가 장기적으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25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최근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내 국내 반도체 칩 사용 이슈도 있고 해서 미국이 규제망을 더 높이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렇진 않아 일단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가드레일 조항을 적용받는 기업은 삼성전자밖에 없다. 하이닉스는 아직 미국에 공장이 없어 보조금을 받을 이유가 없고, 미국 내 반도체 관련 시설 건설을 검토 중이라고만 발표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다만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가드레일 규정 외에 새로운 장비가 중국 현지공장에 도입되지 못한다면 (우리 업계에) 장기적으로 타격이 클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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