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회의원 가상자산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회의원 가상자산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의원 가상자산 보유 현황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가족이 보유한 가상자산은 조사 범위에서 제외된 데다 이해충돌 여부도 판단하기 어려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권익위는 지난 18일 국회의원들의 가상자산 현황 조사를 시작했다. ‘국회의원 가상자산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단장을 맡고, 전문 조사 인력 약 30명을 투입해 90일간 국회의원이 취득·거래·상실한 가상자산 현황을 조사할 예정이다. 

앞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5월 국회에서 ‘가상자산 자진신고 및 조사에 관한 결의안’이 의결됨에 따라 이달 4일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제3자 제공동의서를 권익위에 제출했다. 권익위는 21대 국회의원 임기개시일인 2020년 5월 30일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동의서를 제출한 국회의원 본인의 가상자산 현황을 조사하고 신고내용과 일치하는지를 검토하게 된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거액의 가상자산을 보유·거래한 이력이 밝혀지면서 시작된 이번 조사는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현황을 투명하게 밝히고 이해충돌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조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사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사 대상에서 국회의원의 배우자·부모·자녀 등 가족의 가상자산 보유·거래 현황은 제외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은 국회의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보유한 가상자산을 재산신고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연말부터 시행되는 만큼 이번 조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조사가 시작된 지난 18일 논평을 내고 “가상자산을 부정한 방법으로 사용하고자 했다면 본인 명의로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적다”며 “기존 공직자 재산등록이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대상 범위로 하고 있음에도, 조사대상에 배우자와 부모, 자녀를 미포함시킨 것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거래가 이해충돌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장을 맡은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법률의 제·개정 시 직무를 회피 의무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국회의원의 직무, 즉 상임위 활동과 관련한 가상자산의 보유 및 거래 과정에서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의혹 등을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은 이어 “청문이나 청원심사, 국정감사, 국정조사와 관련된 업무는 제외 범위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할 수는 있지만 대다수의 업무를 차지하고 있는 의안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법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하기가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의 발단이 된 김남국 무소속 의원 코인 논란의 핵심은 이해충돌 문제다. 만약 이번 조사가 가족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은 물론 이해충돌 여부에 대한 판단까지 배제한 채 어느 의원이 얼마나 많은 코인을 보유했는지만 밝히고 마무리된다면 ‘반쪽짜리’ 조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거래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규제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연방법전  제18편 제208조에서 본인 또는 가족 등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공무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재산의 유형을 불문하고 재산 보유에 따른 이해충돌 상황이 방지될 수 있도록 했다. 미 정부윤리국은 해당 규정에 따라 가상통화(virtual currency)도 투자 자산(investment asset)인 만큼 이를 보유한 공직자에게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암호화폐나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한 공직자가 해당 자산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직무에 관여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발표한 ‘2023 국정감사 이슈분석’ 보고서에서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를 직접 규율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은 가상자산 보유에 따른 이해충돌 문제 및 그 해소방안을 직접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가상자산의 경우, 공직자가 가상자산을 보유하더라도 직무에 미치는 영향이 심사되거나 직무대리자 지정・직무 재배정・전보 등으로 이해충돌 상황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방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이어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한 부동산을 보유한 경우와 유사하게 가상자산 보유로 인한 이해충돌 상황을 심사하고, 직무수행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직자가 담당 직무에서 제척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규정을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정 부위원장은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사할 예정”이라며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등 조사 과정에서 취득한 자료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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