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 모습. 사진=뉴시스
전기차 충전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 정부가 오는 2032년까지 판매되는 신차의 67%, 3분의 2를 전기차로 대체하기로 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 탄소 배출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TY)·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지난 9일(현지시간)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오는 12일 미 환경보호청(EPA)이 이 같은 내용의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전기차 판매 규모와 비중을 지정하는 대신 전체 판매된 차량의 배출가스 한도를 엄격히 제한한다는 것이다. 북미산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전기차를 더 빠르게 보급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에서는 연간 1400만대 안팎의 신차가 판매되고 있으며 지난해 전기차는 약 81만대(5.8%)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5.8%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증가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목표는 기후 변화를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해 온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가운데서도 가장 급진적인 수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2030년까지 전체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미 캘리포니아 주는 2035년까지 주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100%가 배출가스 제로여야 한다고 의무화했다. PBS 뉴스아워에 따르면 최소 12개의 추가적인 주(대부분 해안 지역)가 캘리포니아의 선례를 따를 것인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30년까지 배출량을 55%, 2035년까지 100% 감축할 계획이다. 영국도 내년까지 전기차 판매량 목표를 전체의 22%로 하고 2035년에는 100%로 잡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새 규정과 관련된 EPA의 발표가 빠르면 이번 주 안에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만약 신 자동차 탄소배출 규제안이 통과된다면, EU의 '유로(EURO) 7' 배출 기준과 매우 유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유로 7은 2035년 내연기관차를 종식시키려는 EU의 배출가스 규제다. 승용차는 2025년 7월부터, 대형 상용차는 2027년 7월부터 적용된다. 

모든 자동차 제조업체는 신차의 각종 오염 물질(일산화탄소·탄화수소·질소산화물·미세 입자 물질)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 유로 7 기준이 도입되면 가솔린과 디젤 구분 없이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60mg/km에 맞춰야 한다. 

또 배출가스 이외의 다른 부분은 강화됐다. 먼저 타이어와 브레이크에서 발생하는 미립자 배출 가준을 준수해야 한다. 전기차도 피해 갈 수 없다. 유로 7에서는 10년 및 20만 km로 2배 강화됐다. 그만큼 후처리 장치의 내구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업체는 내연기관차에 각종 배출 저감 장치를 추가로 달아야 하는 한편, 내구성을 크게 높여야 해 제조 비용이 올라간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규제안이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도 심각한 도전이며 업계에도 큰 부담이 될 것"라고 내다봤다.

또 중국과의 첨예한 대치 속에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의 원자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도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번 미 당국의 탄소배출 규제안으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IRA에 이어 또 하나의 난관을 맞이하게 됐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미국 시장에 전체 자동차 판매의 58%를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2030년 북미 전기차 비중 47%'를 목표로 내세운 기아도 입장은 같다. 100% 전기차만 판매하는 테슬라를 제외하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기존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 공장의 전기차 추가 생산 시기를 앞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는 조지아 전기차 신 공장 완공도 내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11일 <이코리아>와 통화에서 "외신을 보면 패신저 비히클(passenger vehicle)이라고 표기했는데, 이는 전체 자동차가 아닌 승용차 기준으로 봐야 하며 이는 세단,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밴, 1톤 픽업트럭 등"이라면서 "올해 미국내 자동차 판매량은 대략 1500만대로 예상하는데, 신차 판매량이 고정된다고 가정하면 2030년 이후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10배, 즉 800만대 이상이 되는 셈이다. 800만대의 전기차를 2032년에 팔수 있겠냐 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일단 충전기가 따라가지 못 한다는 이슈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IRA가 '당근'이라면 이 탄소규제안은 '채찍'을 동원한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전체적으로 전기차 수요 촉발의 동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사실 과한 욕심이다. 작년 5.8% 전기차 신차 판매 중에서 67% 목표는 너무 공격적이고 시간도 많지 않다. 하지만 산업적 생태계도 봐야 한다. 정작 미국업체들이 (정책을) 못 따라오면 정부도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의 작년 미국 실적이 좋은데 좀 더 속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면서 "현대·기아차는 미국 정책 관련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서 다른 기업보다 선점의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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