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니 샌더스 트위터 갈무리
= 버니 샌더스 트위터 갈무리

[이코리아] 최근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이 로봇세의 도입을 다시 제안했다. 샌더스는 19일 CBS와 인터뷰 도중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 혁명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나는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 기술 혁명의 수혜자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로봇세가 한 가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로봇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근로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버니 샌더스 의원은 이전부터 로봇세의 도입을 주장해왔다. 로봇세는 80년대 후반 미래학자들이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1994년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기업들이 최신 설비를 도입해 실업률이 높아졌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의 기술연수 확대 및 실직 수당을 위해 로봇세 도입을 고려하겠다.”라고 발표하면서 로봇세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간 노동자를 로봇이 대체하게 되면서 사라진 일자리에 대한 세금을 로봇에 부과한다는 개념이다. 

2017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을 사용하면 로봇 사용자에게 소득세 수준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로봇세의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년도에 옥스퍼드대학이 영국 노동 시장에서 일자리의 35%가 향후 20년 이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로봇세 개념은 더욱 주목받았다.

소프트웨어 기업 프리에이전트가 영국에서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7%의 응답자가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면, 로봇을 소유한 회사에 똑같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에 동의했다. 프랑스 사회당의 정치인 브누아 아몽은 17년도 프랑스 대선에서 로봇세를 공약 중 하나로 채택하기도 했다.

로봇세 개념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국제로봇협회는 빌 게이츠의 로봇세 주장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풀기 위한 주장’이라고 비판했으며, 로봇세가 도입되면 고용과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기술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로버트 시먼스 뉴욕대 교수는 로봇세가 기업과 근로자,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2021년 브루킹스 연구소에 기고한 글을 통해 밝혔다. 시먼스 교수는 일본, 캐나다, 스페인 등에서 시행한 연구 결과 로봇을 도입한 회사가 오히려 고용이 증가했던 사례를 들었다. 이 때문에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로봇이 노동을 보완하여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로봇’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도 들었다. 로봇팔, 로봇 공정 자동화 등 다양한 범위에서 ‘로봇’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로봇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로봇세의 업종 간 영향이 다르게 미칠 수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먼스 교수는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는 로봇세의 도입보다 세금 격차 해소, 노동 시장의 마찰 완화 등 다른 정책에 집중하는 것이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EU에서는 2015년 로봇에게 ‘전자인간’ 지위를 부여하고 로봇의 사용으로 실직한 사람들을 위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며 로봇세 도입의 법제화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2017년 2월 유럽의회는 ‘로봇공학에 관한 민사법 규칙’ 결의안을 통과시켜 로봇의 개발 및 확산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와 법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입법화했지만, 로봇세 도입은 부결되었다. 이후 국가적으로 입법과정에서 로봇세 도입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사례는 없었다.

AWS를 이용한 스마트팩토리 시연 = 뉴시스
AWS를 이용한 스마트팩토리 시연 = 뉴시스

그렇다면 국내에서의 로봇세 논의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한국은 세계에서 로봇 도입이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국제로봇연맹이 내놓은 ‘2022 세계 로봇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2021년 산업 로봇 밀도는 1000대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로봇 밀도가 네자릿수를 넘어선 국가가 되었다. 로봇 밀도 1000대는 제조업 노동자 10명당 로봇이 1대꼴로 배치되어 있다는 뜻이다.

2021년 대선 당시 주요 후보들은 로봇세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대구의 로봇 제조업체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로봇 산업 육성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로봇세에 대해서는 “로봇을 쓰는 기업에 대해서는 사람을 덜 쓰니까 세금을 받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라고 일축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방안의 하나로 로봇세 도입을 주장했다. 이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데이터세, 인공지능 로봇세, 토지 보유에 따른 불로소득을 줄이기 위한 국토보유세 등을 조금씩 부과하면서 그만큼 전액을 국민께 지급하는 방식으로 확보해가면 (기본소득의) 재원 조달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로봇세 도입이 산업 육성 발전을 저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추 장관은 “지금은 일단 로봇 산업을 좀 더 육성하고 우리 사회 경제에 더 기여 하도록 해야 한다. 세금 같은 규제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책연구 기관에서 한국의 로봇세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논문 ‘로봇 도입의 효과와 로봇세에 대한 논의’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세계적으로 로봇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이 노동소득분배율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로봇 도입의 효과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먼저 한국에서 로봇 도입의 효과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의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도 로봇세 도입의 반대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로봇의 도입이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의 해결책이 될 수 있어 로봇의 도입을 저해하는 로봇세의 도입은 부정적인 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해당 분석은 아직 잠정적인 결과로 정확한 결론을 위해서는 상당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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