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바로사 가스전 개발사업 개요. 자료=기후솔루션
호주 바로사 가스전 개발사업 개요. 자료=기후솔루션

[이코리아] 한국무역보험공사가 호주 가스전 개발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업 진행이 미궁에 빠진 해외 화석연료 개발사업에 공적금융의 투자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는 지난 26일 에스케이이앤에스(SK E&S)가 참여 중인 호주 바로사-칼디타 해상 가스전 개발사업(이하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한 3300만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보증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SK E&S는 호주 석유기업 산토스(Santos), 일본 전력기업 제라(Jera)와 합작해 해당 사업을 추진해왔다. 확인된 가스 매장량만 약 7000만 톤으로 SK E&S는 가스전 준공이 완료된 2025년부터 20년간 연 350만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 또한 지난 2021~2022년, 해당 사업에 대해 각 3억3000만 달러씩 총 6억6000만 달러(약 8000억원)의 금융지원을 승인한 바 있다.

해외 자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임에도 무보의 이번 결정이 우려되는 이유는 해당 사업의 진행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실제 바로사 가스전 사업은 지난해 6월 바로사 가스전 인근 티위섬원주민들이 시추 인허가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추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환경 계획 수립 과정에서 인근 주민과의 협의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현지 법원은 “사업자인 산토스는 티위섬 원주민들의 존재와 원주민들이 티위섬, 주변 바다, 해양 자원들과 전통적으로 맺어온 연관성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과 협의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다”며 지난해 9월 열린 1심은 물론 12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현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게다가 최근에는 가스관 건설 공사에도 제동이 걸렸다. 호주 해양석유환경청(NOPSEMA)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바로사 가스전 수출 파이프라인 건설 공사가 원주민의 해저 문화유산에 미칠 영향을 다시 평가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렸기 때문. 호주 해양석유환경청은 지난달 21~22일 예고 없이 진행된 환경 감사를 통해, 해당 사업이 수중 문화유산에 미칠 잠재적 위험이 현재 환경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바로사 가스전 사업이 ‘좌초’로 결론난 것은 아니다. 당장 해당 사업의 대주주인 호주 석유기업 산토스가 다음 달 바로사 가스전 인근 티위 제도를 방문해 원주민들과 대화에 나설 계획이다. 또한 해양석유환경청의 시정명령 또한 가스관 공사 계획을 보완하라는 것으로 인허가 자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 전력난으로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만큼, 해외 가스전 개발사업에 대한 공적금융의 지원은 당연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25일 열린 세계가스총회(WCG)에서 “최근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며 “수입선 다변화로 자원 비축을 확대하는 한편 민간이 중심이 돼서 해외 투자의 활력을 높이고 해외 자원 개발에 관한 산업 생태계를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엿새 뒤인 31일, 수출입은행은 여신심사위원회를 열고 무보에 이어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해 3억3000만 달러의 금융지원을 결정했다.

다만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공적금융의 해외 화석연료 개발사업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실제 국내 공적금융의 해외 화석연료 투자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미국 환경단체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OCI)과 지구의벗 미국 지부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G20 국가 공적금융기관 및 다자개발은행의 에너지 투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공적금융은 지난 2019~2021년 사이 연평균 71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는 일본(106억 달러), 캐나다(85억 달러)에 이어 조사 대상 국가 중 3위에 해당한다.

무역보험공사 또한 ESG 투자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연장한 것은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보는 바로사 가스전 사업 관련 투자의향서에 국제 환경 규범 등을 투자기준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국제금융공사(IFC)의 환경·사회적 성과표준(Performance Standard7), 적도원칙 등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원주민 등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 환경 규범을 위반해 중단된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해 무보가 금융지원을 연장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안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실행 여부도 지켜볼 대목이다. 앞서 기후솔루션은 지난 12일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을 상대로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기후솔류션 손가영 연구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호주 바로사 가스전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합의한 국제메탄서약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주영 변호사도 "OECD 환경사회권고안, 국제금융공사의 환경 사회적 성과표준, 적도원칙 등에 비춰볼 때,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 결정은 위법하거나 부당하다"며 엄정한 감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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