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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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새해를 맞이해 세계 각국의 빅테크 규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유럽은 트래픽을 많이 사용하는 콘텐츠사업자 (CP) 가 더 많은 통신망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연결 인프라 법안’을 추진 중이다. 10일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연결 인프라 법안을 추진하기 위해 빅테크 및 통신업체에 인프라에 대한 투자 지출 현황과 클라우드 인프라 전환 계획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유럽연합은 상당한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해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의 연결 인프라 법안에 대한 찬반논쟁은 한국의 망 사용료 분쟁과 유사한 모습이다. 도이치 텔레콤, 오렌지, 텔레포니카, 텔레콤 이탈리아 등 대형 통신사들은 6대 콘텐츠 사업자가 유럽의 인터넷 트래픽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이들에게 공정한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수석 부위원장은 이전에 “방대한 데이터 트래픽을 생성해 사업을 영위 하면서도, 망 연결성을 위한 투자에는 기여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라며 빅테크를 비판했다.

또 지난해 5월에는 유럽 통신 네트워크 사업자 협회(ETNO)에서 유럽의 통신 사업자들이 네트워크 구축 및 운영에 연간 200억 유로(약 28조 원)를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8월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3개국이 집행위원회에 해당 법안을 마련하라는 요구서를 함께 제출했으며, 9월에는 유럽 16개 통신사 최고경영자들이 빅테크의 망 투자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빅테크 기업들은 망 사용료가 인터넷 트래픽에 대한 세금이며, 해당 법안으로 인해 유럽의 망 중립성 규칙이 훼손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EU 내부에서도 작년 7월 54명의 의원이 “대형 통신사들이 고객들로부터 인터넷 접속 비용을 받고 있으면서도 콘텐츠 제공 업체들을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항의 했다.

유럽 인터넷 교환 협회(Euro-IX)는 유럽연합 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빅테크에 대한 지분 비용 부과는 상호 연결 계약 체결 비용을 증가시키고, 네트워크 선택을 억제하며, 상호 연결 밀도와 최종 사용자에 대한 서비스 품질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유럽의 인터넷 전반에 걸쳐 ‘시스템적 약점’이 만들어질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티에리 브르통 EU 산업담당 집행위원은 EU 행정부가 올해 1분기 말까지 빅테크의 유럽 통신망 비용 일부 부담 여부를 두고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의 연결 인프라 법안의 향방에 따라 각국의 망 사용료 법제화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망 사용료 법제화는 반대여론에 부딫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한편 유럽의 ‘구글 갑질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디지털시장법 (DMA)는 올해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디지털시장법은 월간 사용자 4500만 명 이상의 빅테크 기업이 앱 마켓에 제 3자 결제를 허용하고, 다른 회사의 앱 마켓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뉴시스

미국도 빅테크 압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낸 기고문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빅테크의 기술 남용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기술 회사가 이룬 성과와 업계에서 일하는 재능있는 사람들이 자랑스럽지만, 일부 빅테크 기업이 개인 정보를 남용하고, 사회의 극단화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정부는 법적 권한의 한계에 부딪혔으며, 이 때문에 양당이 협력해 강력한 규제법안을 처리해 ‘더 공정한 규칙’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빅테크가 생체 인식 및 건강정보와 같은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극단적인 콘텐츠를 노출해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있어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따돌림, 폭력, 트라우마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현재 빅테크 기업이 농어촌이나 저소득층 등 소외 지역, 계층이 통신서비스에 접속하도록 하는 인터넷 공정 기여법(FAIR Contributions Act)을 추진하고 있다. 빅테크를 ‘인터넷 종단 제공사업자 (Internet Edge Provider)’로 정의해 기존 콘텐츠제공사업자(Content Provider)의 개념에서 확장하고, 인터넷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지위와 이용 책임을 규정하는게 골자다. 이를 통해 빅테크 기업이 적정한 수준의 기금을 분담하도록 만들어 통신 인프라를 확충할 비용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서는 5,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한 앱스토어가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공식 앱스토어를 통하지 않고도 다른 창구로 앱을 다운로드 가능한 ‘사이드로딩’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오픈 앱마켓법’과  온라인에서 어린이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도 추진되고 있다.

인도 역시 빅테크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인도 의회는 지난달부터 빅테크의 반경쟁 관행을 규제하는 디지털 경쟁법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터넷 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통신법도 계획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도가 유럽의 엄격한 반독점 정책과 중국의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감시를 조합한 독특한 규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관측했으며, 2023년에 인도와 빅테크 간의 싸움이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29일 '혁신과 공정의 디지털 플랫폼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심화되는 디지털 플랫폼 분야에서 정부, 사업자, 시장참여자 등 모두가 준수해야 할 디지털 질서와 원칙을 구체화 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에는 독과점 심사 지침을 제정하고 기업결합 심사기준을 개정해 거대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와 무분별한 확장에 대해 엄정 대응하고, 앱마켓 경쟁활성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공정한 경쟁환경과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과 불공정 행위는 제한하면서도 성장과 해외 진출은 지원하겠다는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는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정부의 기조도 자율규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작년 10월 일어난 카카오 먹통사태로 인해  이런 자율규제 기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카카오먹통방지법' 등 플랫폼 규제 법안이 연달아 국회를 통과했으며, 지난 정부에서 무산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다시 입법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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