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대화된 서울의 야경.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초현대화된 서울의 야경.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이코리아] 2007년 내가 몽골에 처음 갔을 때 몽골인들의 입에서 가끔씩 듣던 이름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김두한’이었다. 그 많은 역사적인 인물 중에 왜 하필 김두한이었을까? 당시 유행했던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이 김두한이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신기한 상황이었다. 몽골 사람들 중에 한국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이 없고,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동아시아권에서 한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였다.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가 거울을 슬쩍 보고는, 이렇게 묻기도 했다.

“항국 싸람?”

알고 보니 한국에 돈 벌러 다녀 온 몽골 사람들 중 그 번 돈으로 차를 사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이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몽골에 있을 당시 몽골 인구의 1%가 한국에 체류 중이었다. 한국에 이미 다녀온 사람들을 센 숫자가 아니다. 학업 또는 근로의 이유로 또는 불법 체류로 당시 실제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몽골 사람이 몽골 전체 인구의 1%, 즉 백 명 중의 한 명이었단 말이다. 그렇게 한국을 다녀 온 모든 몽골 사람들이 친한파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한파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2012년 우리 가족이 몽골에서 인도네시아로 이주했을 즈음해서는 케이-팝(K-pop)이 뜨기 시작했다. 나는 ‘슈퍼주니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13명이라는 사실을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인도네시아 시골에 사는 아이들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몇몇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슈퍼주니어 멤버의 이름을 줄줄이 외워댔다. 기존 드라마 위주의 한류가 음악 영역까지 확장되며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신한류의 시기였다. 

2015년에 컨퍼런스 차 스위스에 방문했을 때, 그 곳에서 오래 거주한 교민에게서 한국 이미지 변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전에는 스위스 사람들이 (여타 서방 국가의 사람들과 다름없이) 한국에 대해 그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전쟁이 있었던 나라’ 정도의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88올림픽 이후 한국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 후 한국 대기업들이 유럽에서 선전하면서, ‘한국’ 하면 ‘초현대 국가’라는 이미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에 다녀와 본 스위스 지인들의 얘기가, “야, 초현대 국가가 어떠한지 보고 싶으면, 한국에 한번 가 봐라” 하더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위스에 가 보니, 거기는 100년 된 집들이 수두룩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들이 유적으로 지정되어서 자기 집을 자기 맘대로 고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보았다. 그렇게 멋진 문화와 유산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자랑할 만한 일이겠지만, 그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근래에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과 같은 나라의 모든 것이 초현대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덜 알아주거나 특별히 더 무시당하거나 하는 일은 드물다. 최근 몇 년간 있었던 한국 음악과 영화의 전 세계적인 열풍을 생각하면 그게 무슨 특별한 일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특정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평생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여기서 한국의 우월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갈 시대적 상황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 자녀 세대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태어났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교육적으로, 그들은 지구인들 가운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깨달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그들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 세대는 더 갖기 위해 태어난 세대가 아니다. 더 갖기 위한 사명은 이미 기성세대가 이루었고, 우리나라는 명실 공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그렇기에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기성세대 자신들처럼)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평생을 경쟁과 승패와 긴장과 좌절 속에서 살아가길 종용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 행동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일이 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에게 이번에는 다이아몬드 수저가 되라며 채근한다면 그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자녀 세대는 자기 발전만으로 행복할 수 없는 세대이다. 청소년, 청년들의 진로 상담을 하며 그들의 관심 분야를 점검해 보면, 의외로 그들이 인권과 복지 등에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그들이 결코 이기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심장은 자기 자신의 성공을 넘어서는 위대한 가치를 위해 뛰고 있다. 그렇기에 기성세대는 그들이 지구인들 중의 금수저로서, 세계의 발전과 복지에 기여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세대의 먹거리와 일자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헤르몬 산의 만년설이 녹아 갈릴리 호수로 흘러들고 그 호수의 물은 다시 요단강이 되어 사해까지 흘러간다. 물을 받고 다시 내어주는 갈릴리 호수는 각종 생명으로 충만하지만, 물을 받기만 하고 내어주지 못한 사해는 바다보다도 더 짠 소금 덩어리,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받는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주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자녀 세대에게 생명을 물려주려면, 우리가 자랄 때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들은 사해 세대가 아니라 갈릴리 세대가 되어야 한다.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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