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환매중단된 독일 헤리티지 펀드의 최다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의 조정안을 거부하는 대신, 사적화해 방식으로 원금을 전액 반환하기로 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27일 이사회를 열고 독일 헤리티지DLS신탁 일반투자자들에게 원금 전액을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분조위는 지난달 21일 헤리티지 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 6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하고, 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에 6개사 중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개사는 분조위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할 시한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신한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결국 원금을 모두 돌려주기로 하면서 하나·우리은행도 영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신한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모두 분조위 조정안인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가 아니라 ‘사적화해’를 통한 배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신한투자증권은 27일 입장문을 내고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분조위 결정에 대해 고객보호·신뢰회복 등의 기본 원칙과 복수의 법무법인을 통한 다양한 법률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다각도로 논의했다”며 “심사숙고 끝에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라는 분조위 조정안에 대한 법리적 이견이 있어 조정안을 불수용하고 사적화해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한투자증권이 분조위 조정안을 불수용한 이유는 법적 책임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분조위 권고대로 ‘계약취소’를 수용할 경우 헤리티지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온전히 판매사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원금 배상의 근거가 판매사 측의 잘못이라면 주주들로부터 ‘배임’에 대한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없다. 

또한 ‘계약취소’를 수용할 경우 발행사인 KB증권, 키움증권, NH투자증권 3곳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어렵게 된다. 실제 NH투자증권은 과거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해 분조위가 결정한 ‘계약취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적화해를 통해 원금을 전액 반환한 바 있다. 수탁사와 사무관리사인 하나은행, 한국예탁결제원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판매사들이 전액배상을 결정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 분쟁조정 절차가 판매사들의 ‘불수용’으로 마무리되면서 금감원도 체면을 세우기 어렵게 됐다. 분조위 조정안은 권고인 만큼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금융사들이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지난 2019년 분조위는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를 판매한 신한·우리·하나·대구·씨티·산업은행에게 손실액의 15~41%를 피해기업에 배상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를 수용한 곳은 우리은행 단 한 곳뿐이었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피해자들 또한,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절차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7일 논평을 내고 “독일헤리티지 펀드 최대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의 이번 결정은 금감원의 향후 분조위의 법률적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향후 금융감독원의 분조위 결정의 위상과 공신력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분쟁조정 절차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금감원은 다수의 은행이 키코 관련 배상안 거부하자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소비자가 분쟁조정안을 수용하면 상대 측 금융사도 무조건 따르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지난 2020년 편면적 구속력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대선 당시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다만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되면 금융사가 분조위 조정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만큼, 헌법이 보장한 금융사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론이 있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신한투자증권은 “사적화해 방식에 동의한 일반투자자에게는 투자원금 전액이 지급되며, 분조위 결정에서 빠졌던 전문투자자에게도 투자원금의 80% 이상을 지급하는 사적화해안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결의된 사적화해안으로 고객과 성실하게 협의할 것이며, 협의 완료 시 최대한 신속하게 해당 금액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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