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차기 기업은행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정 전 원장이 지난 5월 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시중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차기 기업은행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정 전 원장이 지난 5월 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시중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유력한 차기 기업은행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금융규제혁신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은행장 임명은) 금융위원회 제청이기 때문에 복수 후보자를 검토하고 있다”며 “(정 전 원장도) 후보자 중 한 명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원장은 행정고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재정부, 금융위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해 8월에는 금감원장으로 임명됐으며, 올해 6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음 달 2일 임기가 만료되는 윤종원 현 기업은행장의 후임으로 다양한 후보자의 이름이 오가는 가운데, 정 전 원장 또한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돼왔다.

문제는 정 전 원장의 차기 행장 선임을 두고 내부 반발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행시 27회 출신인 윤 행장의 후임으로 또다시 관료 출신 인사가 거론되는 것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앞서 10년간의 내부승진 관행을 깨고 지난 2020년 취임한 윤 행장 또한 취임 후 약 한 달간 노조의 반발로 출근하지 못한 바 있다. 만약 정 전 원장이 차기 행장으로 내정될 경우 윤 행장에 이어 두 차례 연속 관료 출신 인사가 기업은행을 지휘하게 되는데, 노조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 

실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는 지난 10월 성명을 내고 “은행을 감시·감독하던 금감원장을 은행장 시키는 게 새 정부가 추구하는 상식과 공정이냐”며 “각종 사모펀드 사태를 감사하던 그가 기업은행장이 된다면 비상식과 이해충돌에 주주와 고객은 물론 국민도 반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도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공직자윤리법 제17조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을 해석하면, 금감원장을 그만두고 3년 안에는 은행장이 될 수 없다. 공정성에 어긋나고 부당한 권력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기업은행은 자체수익을 창출하며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조직이지만 기타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이 법 조항에서 예외다. 결국, 법의 맹점을 이용해 내리꽂겠다는 것이니 ‘법꾸라지 낙하산’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금융노조는 이어 금융당국이가 정 전 원장을 차기 행장으로 내정할 경우 공직자윤리법 개정 및 출근 저지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디스커버리 환매중단 사태 관련 배상 문제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정 전 원장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종원 행장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배상에 합의한 피해자는 전체의 55%에 불과하다.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지난해 5월 디스커버리 펀드와 관련해 40~80%의 자율배상을 권고한 지 1년 7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배상 논의가 지지부진한 셈이다. 배상에 합의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디스커버리 펀드 판매는 사기였다며 ‘계약취소’에 따른 원금 전액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배상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등 금융사와 대립각을 세웠던 윤석헌 전 금감원장과는 달리, 정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시장조성자 역할을 하는 증권사 9곳에 대한 과징금 483억원을 취소하는 등 친시장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나은행 사모펀드 제재심과 관련해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규제 칼날이 무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 전 원장은 “금융소비자를 사후 제재 만으로 완벽히 보호할 수는 없다”며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정 전 원장은 디스커버리 펀드 관련 분조위가 마무리된 이후인 지난해 8월 취임한 만큼, 직접적인 책임을 논하기 어렵다. 다만 지난 2월 기업은행 제재심에서 김도진 전 행장에 대한 징계 수위가 ‘문책경고’에서 ‘주의적 경고’로 한 단계 낮아진 것은 정 전 원장의 이러한 철학이 반영됐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번 주 중 차기 기업은행장 후보를 제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와 디스커버리 펀드 피해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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