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설치된 120대 국정과제 현황판과 윤 대통령 = 뉴시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설치된 120대 국정과제 현황판과 윤 대통령 = 뉴시스

[이코리아]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문제의 해법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는 자율 규제를 선호하지만 학계는 플랫폼의 역동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경쟁친화적인 규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어떤 정책이 산업도 살리고 소비자의 이익에 부합할지 살펴봤다.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 시장의 불공정행위를 규율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으로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를 제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백지화하고, 친기업 기조를 토대로 한 자율규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카카오 먹통사태가 발생하자 윤 대통령은 “독과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고, 더구나 이것이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율'에서 '필요시 대응'으로 입장 변화를 보인 것이다.

현재 온라인 플랫폼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 기조는 '자율 규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6월 디지털 플랫폼 업계 간담회에서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플랫폼 시장을 고려할 때 플랫폼 정책은 혁신과 공정의 가치를 포괄하고 규제 방식도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민간이 주도하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기업의 혁신 역량이 마음껏 발휘되도록 전방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자율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3월부터 관계부처와의 협조 하에 민간의 자율규제 도입 논의를 지원하고 있으며 8월에는 4개 분과로 구성된 플랫폼 민간 자율규제 기구가 출범했다. 

공정위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가 적절하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의 내용을 포함하는 자율규제 논의가 시작됐고, 이를 넘어서는 수수료 관련 이야기까지 포괄하고 있다. 자율규제의 성과를 지켜봐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답변했다.

= 한국법제연구원 제공
= 한국법제연구원 제공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도 이런 자율규제 기조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한국법제연구원은 13일 '온라인 플랫폼 규제: 동향과 쟁점'을 주제로 한국인터넷법학회와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우리나라 온라인 플랫폼 산업 현실에 적합한 규제혁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다.

선지원 광운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미국과 EU의 플랫폼 규제 입법 동향과 국내 규제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미국은 현재 플랫폼 규제 5대 법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EU 역시 게이트키퍼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각종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플랫폼 규제의 방향은 해외와는 다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시장 특성의 차이를 들었다. 한국 시장은 미국과는 다르게 검색엔진, 전자상거래, 배달앱 등 대부분의 시장에서 유효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형 플랫폼의 시장 왜곡 행위가 크게 부각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규제가 필요한 영역에 대해서는 각종 법률상의 규제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하기보다 시장 상황을 면밀히 감시하며 자율규제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직접적인 규제 방식을 채택했을 때 실질적인 집행력이 있을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해외 사업자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집행력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 행위에는 정보 격차로 인해 집행력이 결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함께 발제를 맡은 박창규 고려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혁신과 새로운 시장의 창출로 인해 소비자의 후생이 증진된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존의 정부 주도의 사전규제 방식은 기본권 침해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며 비효율적이고 중복규제의 가능성이 있어 온라인 플랫폼의 역동성을 해치지 않고 혁신의 유인을 키울 수 있는 경쟁 친화적인 대안으로 자율규제를 제시했다.

15일 판교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앞에서 소방관들과 복구 작업을 위해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 뉴시스
15일 판교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앞에서 소방관들과 복구 작업을 위해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 뉴시스

이처럼 여러 기관과 전문가는 온라인 플랫폼의 자율규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자율규제 기조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특히 지난 10월 발생한 카카오 먹통사태로 인해 이런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20년 중복규제가 우려되어 통과되지 못한 ‘카카오먹통방지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은 이번에는 여야의 이견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 공정위는 오는 21일 전원회의를 열어 온라인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지난 9월 온플법 제정을 촉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 = 뉴스시
지난 9월 온플법 제정을 촉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 = 뉴스시

지난 정부에서 무산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도 이런 흐름을 타고 다시 논의가 시작되었다. 민주당이 온플법 논의에 적극적 인데다, 카카오 먹통사태 이후 대형 플랫폼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져 온플법이 입법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2일 여의도에서 열린 ‘독과점적 플랫폼의 공정 혁신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도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하루빨리 국회에서 플랫폼에 대한 소비자 보호 관련 법안을 제정해 제대로 된 디지털 소비 세상이 오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공정위와 새 정부가 플랫폼에 대해 자율규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말도 안 된다. 거대 공룡 플랫폼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플랫폼에게 스스로 규제하라고 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상근이사 역시 “자율규제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이 직접 소상공인과 플랫폼 간의 공정화를 이룬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배가 고픈 맹수한테 알아서 먹이를 먹지 말라고 하는 건 한계가 있다.”라고 말하며 자율규제의 한계점을 언급했다. 이어 “온라인 플랫폼 특성에 맞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중소기업계의 요구가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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