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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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러시아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현지시간 15일 폴란드에 떨어져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대규모 미사일 공세를 펼친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폴란드가 피격되면서 나토군 개입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군부대의 준비 태세를 강화하고 긴급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으며, 러시아 대사를 초치했다. 그리고 나토 30개 회원국은 16일 대사 회의를 소집해 나토 헌장 4조의 발동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현재 러시아는 미사일 공격을 부인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도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반발하며 러시아가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러시아 미사일이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를 타격한 것은 갈등을 중대하게 고조시키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나토 헌장 4조와 5조 원문 = 나토 누리집
나토 헌장 4조와 5조 원문 = 나토 누리집

이번 사태와 관련된 나토 헌장은 4조와 5조이다. 나토 헌장 4조는 나토의 회원국이 영토 보전과 안보에 위협을 받게 되면 다른 회원국과 함께 문제를 협의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리고 5조는 조약의 당사국 중 하나 이상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면 나토 전체가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다른 회원국이 자동으로 개입하여 지원하게 되는 조항이다.

5조는 이러한 무력 공격과 그 결과 취해진 모든 조치를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하게 되어 있으며, 유엔 안보리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 종료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국제연합의 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보리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UN 헌장 제 51조와 관련되어 있다.

외신은 나토 헌장 4조는 회원국 간 논의를 강화하는 절차이고, 5조의 발동은 ‘전면적인 군사 대응’을 의미한다고 보도하며, 러시아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나토의 대응 수위도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만약 미사일이 러시아에서 발사된 것이 사실로 밝혀져 이번 사태가 폴란드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경우, 러시아와 나토 간 전쟁으로 확대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6월에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뉴시스
6월에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뉴시스

나토(NATO)로 불리는 북대서양 조약기구는 1949년 북대서양 조약으로 탄생한 북미와 유럽 국가들의 군사동맹이다. 발족 당시 12개국이 가입했으며, 점차 회원국을 늘려나가 현재는 30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한국 역시 지난 6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지난 9월에는 나토 한국 대표부를 개설하는 등 나토와 협력하고 있다.

나토는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나토군이 실전에 참전한 것은 소련이 해체된 이후였다.

나토 군이 최초로 참전한 전쟁은 90년대에 벌어진 보스니아 전쟁이었다. 나토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아 1993년부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상공에서 비행 금지 작전을 진행했다. 이후 1994년에 나토 전투기가 세르비아 전투기 4대를 격추한 것이 나토 역사상 첫 전투로 기록되었다.

1995년 보스니아계 세르비아인들이 8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이 발생하자 나토는 ‘딜리버레이트 포스 작전 (Operation Deliberate Force)’이라는 작전명으로 세르비아에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1999년에는 코소보에서 전쟁이 발발해 인종청소와 집단학살 등 참혹한 사태가 벌어지자 나토는 ‘얼라이드 포스 작전 (Operation Allied Force)’을 벌여 유고슬라비아군이 코소보에서 철수할 때까지 세르비아 지역을 공습했다. 이후 코소보에 평화유지군(KFOR)을 파견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는 나토 조약 5조가 유일하게 발동된 사례로 남아 있다.  나토는 9.11 테러를 미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으로 간주해, 아프가니스탄에 국제안보 지원군 (ISAF)을 2001년부터 2014년까지 파견했다. 이후 2015년부터 2021년까지 '확고한 지원 작전(Operation Resolute Support)'으로 국제안보 지원군을 이어받아 아프가니스탄 보안군의 임무를 지원했다.

9.11 테러 20주년 추모식에서 연설하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 = 나토 누리집
9.11 테러 20주년 추모식에서 연설하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 = 나토 누리집

작년 9월 뉴욕에서 열린 9.11테러 20주년 추모식에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참석해 9.11 테러 당시 나토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공격 24시간 이내에 나토 동맹국은 상호 방어 조항인 제 5조를 처음 발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토 정찰기가 미국 하늘을 순찰했다. 테러와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며 나토는 유럽과 북미가 공동 안보를 위해 모이는 유일한 장소로서 그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는 2011년에 발생한 리비아 내전에도 개입했다. 리비아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자 당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정부군과 시민군 간에 내전이 발생했는데, 나토는 ‘통합 수호자 작전(Operation Unified Protector)’을 벌여 시민군의 편으로 참전해 공습작전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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