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 두 차례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속내를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서 ‘글로벌 통화정책 긴축 강화와 한국의 통화정책’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최근 통화정책의 자세한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0.25%포인트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기조”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22일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는 “지난 수 개월간 드린 0.25%포인트 인상 포워드가이던스(사전예고지침)은 전제조건이 있다”며 “가장 큰 변화는 미 연준의 최종금리에 대한 시장 기대가 4% 이상으로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이라고 말해 추가 빅스텝 가능성을 암시했다. 실제 10월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 결정됐다. 

◇ 베이비스텝 → 빅스텝, 통화정책 기조 바뀐 이유는?

15일 열린 강연에서 이 총재는 두 번째 빅스텝을 결정한 보다 자세한 이유를 풀어놨다. 이 총재는 과거 기준금리 25bp(1bp=0.01%포인트) 인상을 기조로 삼은 것은 ▲유가 하락으로 물가가 3% 정도로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는 전망 ▲지난 1년간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 점검 필요성 ▲미국보다 낮은 인플레이션과 덜한 노동시장 과열 등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다시 한번 빅스텝을 결정한 것은 7~8월에 언급했던 포워드가이던스의 전제조건이 변했기 때문”이라며 “8월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변동하면서 한국은행도 기존의 통화정책 경로를 불가피하게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한은의 예상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지난 9월 공개한 점도표에 따르면 연말 금리 중간값이 4.4%로 제시됐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9월 연준의 점도표가 상향 조정된 폭은 예상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한국은행이 생각했던 수준보다 50bp 이상 높아진 수준”이었다며 “연준의 빠른 금리 인상과 함께 주요 중앙은행 중 예외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크게 절하되면서 9월 들어 한국 원화의 평가절하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9월 FOMC 직전 1300원 후반을 횡보 중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연준의 자이언트스텝 발표 이후 1400원선을 돌파해 현재 1400원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이 총재는 “글로벌 성장률 하락 전망으로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높아졌으나 예상 밖의 환율상승으로 5~6%대의 높은 물가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한국은행은 특정 수준의 환율을 방어하려 하지는 않지만 급격한 환율변동이 금융안정에 가져올 수 있는, 예를 들어 자본유출 압력 증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한,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외환위기 트라우마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이 총재는 “환율의 빠른 평가절하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어 급격한 환율상승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현재 한국의 대외건전성이 양호한 수준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급격한 환율변동이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도록 여타 정책과 통화정책의 적절한 조합을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통화정책 결정 시 환율 급등에 따른 여론의 공포감도 고려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李 “물가안정이 최우선” 추가 인상폭 말 아껴

한편, 이 총재는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구체적인 인상폭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이 총재는 “향후 통화정책방향에 대해서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더 지속될 것임을 감안해 5~6%대 수준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는 한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향후 금리 인상의 폭에 대해서는 7월과 달리 구체적인 수준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이는 11월 미 연준의 결정, OPEC+의 감산 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움직임, 중국의 당대회 후 제로 코로나 정책의 변화 가능성, 엔화와 위안화의 변동성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한국은행은 이러한 대외여건의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 그리고 금융 및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점검하면서 향후 금리의 인상폭과 그 이후의 금리 인상경로를 결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미 연준이 오는 11·12월 열릴 두 차례의 FOMC에서 기준금리를 125bp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세 번째 빅스텝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11월 금통위에서 한은이 기존 통화정책 기조인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의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류진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8월 이후 기준금리가 250bp 인상되며, 긴축으로 인한 경제 우려도 동반 확대 중”이라며 “특히 이번 (금통위) 결정에서 25bp 소수의견의 주요 근거가 경기 부담과 금융불안 우려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연구원은 이어 “현재 중립금리 이상의 기준금리 수준과 2021년 8월부터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금리인상 효과를 고려해 11월 금통위 25bp 인상을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도 11월 25bp 인상을 전망했다. 강 연구원은 “연준이 강제한 역환율 전쟁 속에서 한국은행도 자유로울 수 없음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연준이 활용하고 있는 ‘경기 침체를 인정한 공격적 금리인상’ 전략은 한국이 기계적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전략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원은 이어 “한국 가계는 미국보다 금리인상에 취약하다... 연준이 주도하고 있는 공격적 금리인상 사이클을 따라갈 수밖에 없겠으나 절대 금리 레벨이 높아질수록 따라가는 속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11월 (금통위)에는 12월 연준 점도표 발표를 앞두고 확인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25bp 금리인상을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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