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년도 제12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년도 제12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이코리아] 정부가 오는 11월부터 공공기관이 보유한 의료 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보유한 MRI와 같은 개인 의료 영상이나 질병 데이터 등이 익명화를 거쳐 민간에 건네질 예정인데, 의료민영화를 위해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주재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민간과 공공기관 협력 강화 방안을 지난 23일 확정했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미활용 상태로 보유 중인 특허와 실용신안 5만5000건 중 민간 수요가 높은 의료와 바이오, 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1만1000건을 무료로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정부의 특허와 데이터 등 개방 방침은 공급망 충격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민간 혁신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보유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특허와 실용신안을 이전받은 민간기업이 얻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우선 국민적 관심이 높은 연금과 의료, 부동산 등 10대 핵심 공공기관의 데이터를 개방하기로 하고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11월부터 순차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국민이 필요한 데이터를 신청하면 공공기관이 직접 가공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활용한 창업 지원 대상 선발 때 자금을 지원하고, 실패 시 재기 지원프로그램도 가동, 민간의 데이터 활용을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건강보험공단의 인플루엔자, 천식, 아토피 등 데이터를 익명화해 제공함으로써 민간은 의료수요를 예측하고 감염병 확산예측 모델을 개발하거나 사업화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보유한 MRI와 같은 개인 의료 영상이나 질병 데이터, 지역별 국민연금 수급자 정보 등이 익명화를 거쳐 차례로 민간에 건네질 예정이다. 

또 국민연금공단은 지역별 국민연금 연금 종별 수급자 현황을 공개해 고령자를 위한 금융서비스 등 민간 서비스 개발이 가능해지고 부동산원은 청약·입주 물량 데이터를 개방한다. 

지난달 비의료인 건강관리서비스 확대·비대면진료 제도화 등을 포함한 정부의 보건의료 분야 규제혁신 과제 발표에 이어 이번 의료데이터 민간 개방으로 다시금 '의료민영화'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6일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고 ‘규제혁신 추진 현황 및 향후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보건복지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비의료인 제공 건강관리서비스 범위 확대 ▲혁신의료기기 선진입-후평가 도입 ▲외국어 표기 의료광고 관광특구로 확대 ▲보건의료 빅데이터 연계·개방 확대 ▲특수의료장비 설치 인정 기준 개선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23종으로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 민간 참여 허용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의약품 배달, 화상투약기 허용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 등을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의료데이터 개방에 대해 진영에 따라 진단과 주장이 엇갈린다. 

학계‧소비자‧업계는 그간 한목소리로 보건의료데이터 적극 확용을 위한 정부 지원과 정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개최한 ‘데이터 경제시대, 보건의료데이터의 보호와 활용’ 토론회에서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건의료 공공 빅데이터의 민간 활용은 비합리적인 규제와 편견에 갇혀있으며 마이헬스웨이 사업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논리로 반대한다”며 “주요 반대 논리는 의료민영화인데, 현재 민간이 주도하는 진료와 건강관리 시장에서 건강정보 활용은 오히려 건강의 공공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와 함께' 강성경 사무총장은 보건의료데이터가 소비자의 데이터 주권과 편익 실현을 목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강 총장은 “보건의료데이터의 바람직한 활용을 위해 우선적으로 의료데이터에 대한 소비자 중심적 주권의식 확립이 우선돼야 하며 데이터의 산업적 활용에 대한 관리, 감독, 평가 등 제도적 환경 개선과 함께 데이터 보호와 활용의 균형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시민사회 단체는 ‘노골적인 민영화’라고 주장한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내고 “기업친화적 규제완화로 이미 영리화된 의료시스템을 더 악화시키겠다며 시한과 방법을 못 박았다”며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규제완화로 기업에 종합선물세트를 안기려 한다. ‘민영화 정부’라 불릴만하다.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행 의료법은 아무리 개인이 동의해도 영리기업이 환자 진료기록을 직접 전송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의료정보는 민감해 기업이 손쉽게 수집하면 인권침해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심평원과 건보공단 같은 공공기관에 있는 시민들의 정보를 기업에게 더 ‘연계·개방’하겠다는 정책은 오로지 기업 돈벌이를 위한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관련 법정논란이 끝나지 않아 책임소재의 유무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관계자는 26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건강정보는 의료법 기준에 따라야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2조를 개혁하면서 가명정보란이 생겼다. 가명정보(익명화)에 한해 개인 의료정보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어서 문재인 정부 때부터 논란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법은 의료외 목적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맞고, 개인정보보호법은 행안위 소관이라 법적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면서 “영리목적으로 개인의료정보를 넘겼는데 만일 그 데이터가 다른 것과 결합돼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 하는 문제가 더 크다. 공단이냐 해당 의료기관이냐 아니면 정부냐 등 책임소재가 퇴색된다. 소송을 걸 수 있는 당사자가 실질적으로 모호해지면서 피해는 소비자 뿐”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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