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기후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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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기후변화와 연료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겨울철 전력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력 수요가 높을 때 전기소비자가 전기사용량을 감축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받는 ‘수요반응(Demand Response) 자원’ 제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제도적 한계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력수요 감축해 전력난 대응하는 '수요반응자원' 제도

기후솔루션이 지난 19일 ‘기울어진 전력시장: 수요반응자원을 차별하고 가스발전을 우대하는 시장 구조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수요반응(DR)은 전력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전력수요를 조절해 전력수급을 관리하는 제도다. 전기소비자는 전력 수요가 높은 시기 전력거래소의 지시에 따라 공장 작업스케쥴을 조정하거나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는 등 전력사용량을 줄이고, 그 대신 절약한 전기를 시장에서 거래해 금전적인 보상을 받게 된다.

국내에는 지난 2014년 11월 처음 수요반응자원 거래시장이 개설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수요반응자원 거래시장 등록용량은 총 4549.8MW로 약 7년 만에 개설 당시(861MW)보다 5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4~5기의 연간 발전용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수요반응 제도는 예비전력이 6.5GW 미만으로 줄어들면 전력거래소의 지시에 따라 수요를 감축하는 ‘신뢰성DR’과, 하루 전 발전기와 동일하게 입찰해 발전기보다 경제적이면 낙찰량을 배정받아 전력 수요를 줄이는 ‘경제성DR’ 등으로 나뉜다. 지난 2018년 수요반응자원 거래시장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전력시장 규칙이 개정되면서, 국내 수요반응자원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개선돼왔다. 현재 국내 수요반응자원 신뢰도는 100%를 넘어섰는데, 이는 전력거래소가 감축하라고 지시한 전력량보다, 실제 감축한 전력량이 더 많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해 신뢰성DR과 경제성DR의 감축이행률은 각각 111%, 157%에 달했다. 

이 밖에도 전력계통 주파수가 59.8Hz 이하로 하락하면 자동으로 수요를 감축하는 패스트DR도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신서천화력발전소 발전기가 고장나 주파수가 하락하자, 4초 만에 패스트DR이 발동해 1분간 620MW의 전력수요를 줄인 바 있다. 패스트DR이 발동한 덕분에 전력계통 주파수는 6초만에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

◇ 가스발전 중심 전력체계, 수요반응 활성화 지연

문제는 전력난에 경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인 수요반응자원 제도가 아직 제도적 한계로 인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뢰성DR을 발동하기 위한 기준이 여전히 까다로운 편이다. 지난 6월 신뢰성DR 발동 기준이 예비전력 5500MW에서 6500MW로 완화됐지만, 예비전력이 해당 기준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실제 지난해 신뢰성DR은 불과 4회 시행됐을 뿐이다. 경제성DR 또한 최저입찰가격 기준(순편익가격)이 전력도매가격(SMP)보다 높게 설정됐기 때문에, 입찰량 대비 낙찰량이 적은 편이다. 

기후솔루션은 국내 에너지정책이 수요반응자원 제도를 통해 수요를 조절하는 것보다는, 가스발전을 통해 공급량을 확대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30년 전체 발전량의 20.9%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전 정부가 발표한 NDC 상향안(19.5%)보다 1.4%p 상향된 수치다.

가스발전은 석탄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 에너지 전환기 교량 역할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나 원전보다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만큼 과도한 의존은 오히려 기후위기를 앞당길 수 있다.

게다가 최근 가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한국전력이 발전사에게 지불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은 이달 들어 kWh(킬로와트시) 당 200원을 넘어서는 등 매일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고 있기 때문. 이미 상반기 13조30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한전의 재무상황은 가스발전의 비중이 커질수록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후솔루션은 과도한 가스발전 보상제도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총괄원가보상제를 통해 발전사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발전사로써는 가스발전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이 때문에 가스발전이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데다, 가동률이 낮은 가스발전소 또한 적시에 퇴출되지 않고 있다.

가스발전이 총괄원가보상제를 통해 수익을 보장받고 있는 반면, 수요반응자원은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발전자회사가 운영하는 설비를 포함한 모든 가스발전의 용량요금은 kW 당 7만4800원으로, 수요반응자원에 비해 최대 2.7배 높은 금액을 받고 있다. 또한, 가스발전은 계통운영서비스정산금으로 지난해 533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명목으로 수요반응자원에 지급된 돈은 전혀 없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규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연료비 가격이 치솟으면서 한전 적자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가스설비를 무분별하게 늘리는 것에 동감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며 “수요를 빠르게 조절할 수 있는 수요반응자원은 출력변화가 잦은 재생에너지와도 시너지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이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체계를 빠르게 재편해야 할 이 시기에 수요반응자원의 활용을 높이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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