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APR1400 원자력발전소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APR1400 원자력발전소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 친환경 에너지로 공식화했다. 그간 부침이 많았던 원전 산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지만 유럽 안전성 기준의 친환경이 아니라서 원전 투자나 수출에 제약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환경부는 20일 원자력발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는 한국식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발표했다.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의 범위를 분류한 목록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는 원전을 제외한 채 이 분류 목록을 발표했는데, 9개월 만에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앞서 지난 7월 녹색분류체계 기준을 가장 먼저 세운 유럽도 원전을 이 분류에 포함했다. 

이날 공개된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보면 소형모듈원자로(SMR), 방사성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차세대 원전, 사고저항성핵연료(ATF), 방사성폐기물 관리, 우주·해양용 초소형 원전, 내진성능 향상 등 원전 안전성·설비신뢰도 향상 등을 위한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과 관련된 제반 활동은 ‘녹색부문’에 포함됐다.

국내 녹색분류체계는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나뉜다. 녹색부문은 ‘탄소중립과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이다.

전력이나 열을 생산·공급하고자 원자력을 이용하는 설비를 구축·운영하는 활동(원전 신규건설)과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 계속운전을 목적으로 설비를 개조하는 활동(원전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으로 분류됐다. 

환경부는 이번에 발표한 개정안은 초안으로, 이후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오는 11월까지 K-택소노미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날 브리핑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라는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K-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서 원전산업들의 기대감이 크다.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만큼 소형모듈원자로, SMR 등 새 기술 투자 활성화 및 국내 원전 수출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원전업계는 그간 이 분류에 원전을 넣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국가가 ‘원전은 친환경’이란 공식 마크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가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투자가 대세인 만큼 ESG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녹색분류체계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그간 정부 주도로 원전기술개발이 이뤄졌는데, 원전이 K-택소노미에 포함되면서 국내 민간투자의 기반을 마련해줬다”면서 “다만 원전을 활용한 핑크수소가 이번 초안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세계원자력협회(WNA),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새로 계획 중인 전 세계 대형원전은 95기로 이에 따른 사업비는 2035년 약 8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원전 건설 외에 SMR(소형모듈원자로 640조원 규모), 원전해체(135조원),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60조원) 등까지 더하면 전 세계 원전 시장은 총1635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고, 소형 원자로인 소형모듈원전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외 투자자들이 원전에 투자할 때 유럽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우리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유럽의 경우, 우리 정부가 발표한 것보다 엄격한 자체 녹색분류체계(EU-택소노미)를 확정했다. 관련 법규에 규정된 ‘최신기술기준’만 적용하면 되는 한국 원전으로는, 최신기술보다 더 앞선 ‘최적가용기술’까지 적용하도록 한 유럽의 택소노미를 통과하기 어렵다. 

유럽에선 기존 연료봉보다 안전한 신형 핵연료를 당장 3년 뒤부터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는데, 한국은 이보다 6년 늦은 2031년부터다. 또 유럽은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페기물 처리장을 확보할 것을 명시했는데, 한국은 이번 계획에 확보 시점이 없다. 특정 지역이 후보지에 포함만 돼도 주민들 반발이 커서 기한을 못 박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유럽에서는 유럽 택소노미를 적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 기준을 못 따라가서는 (이번 녹색분류체계 수정안이) 수출에도 도움이 안 되고, 한국 택소노미 자체의 신뢰성만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환경단체 쪽에서는 녹색분류체계가 원전 중심으로 재편되면 재생에너지 투자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1년 7.5%(총발전량 577TWh 중 43TWh)로, OECD 평균(30%)의 1/4 수준에 불과했다. 또 규모가 작은 만큼 국내 재생에너지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만 100% 쓰겠다는 약속, RE100은 이미 전 세계적 추세다.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하면 당장 기업 활동부터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RE100을 선언했지만, 참여 기업 성적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3%에 불과해  상당히 뒤쳐져 있다. 이렇게 되면 2040년 우리나라 수출이 최대 40%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원전 중심의 정책 때문에 재생에너지 전환이 늦어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이날 논평을 내어 “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원전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용 지원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