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2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2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이코리아] K반도체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8월 반도체 수출이 26개월 만에 역성장 (-7.8%)을 기록하는 등 반도체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5분의1을 차지한다. 따라서 반도체 수출이 줄면 국가경제에도 큰 손실이 돼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급망 불안이 가중되고, 주요 국가가 대대적인 반도체 투자로 기술 선점에 나서면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8월 반도체 수출, 26개월 만에 역성장(-7.8%) 기록

지난달 무역적자가 100억 달러에 육박해 월간 기준 사상 최대에 달했다. 넉 달째 이어진 대중무역적자와 원자재 폭등도 문제지만 주력 상품인 반도체 수출의 뒷걸음질이 큰 원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1일에 발표한 ‘2022년 8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8월 반도체 수출액은 107억8000만달러. 1년 전보다 7.8% 줄어, 26개월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첨단 전자제품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과잉 재고로 반도체 수요도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 재고가 늘며 주력 수출품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값 하락세가 이어질 전망이란 점이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위기가 갑작스레 온 것은 아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IIT)의 지난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 각각 57.4%, 29.4%씩 늘었던 반도체 수출은 2018년 말부터 3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2017년부터 2년간 지속된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점검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반도체산업이 처한 상황이 최근 10년 내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의견도 많다. 최근 10년 내 있었던 국내 반도체산업의 부진 시기, 즉 중국의 메모리시장 진입기였던 2016,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된 2019년보다 현 상황이 더 암울하다는 것이다. 

2016년은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출과 사드 사태 여파로 4년간의 수출 증가세가 꺾인 해이다. 2019년에는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반도체 다운사이클 여파로 반도체 수출이 1281억달러에서 952억달러로, 전년대비 약 26% 가량 감소했다.

실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하락세도 심상치 않다.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가격은 최근 수개월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극내 반도체 기업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주력인 메모리 D램 가격이 2분기보다 최대 18%가량 하락할 것이란 3분기 전망이다. 

지난달 10일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이 같은 내용의 새로운 가격 전망을 제시했다. 트렌드포스는 “(D램 강자인) 한국 공급업체들이 유통업체와 고객사의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가격 타협 의지를 높이면서 가격이 하락했고 다른 업체들도 이에 따라 판매 가격을 대폭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며 “3분기 소비자 D램 가격은 최대 18%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K반도체 앞날에 위기요인으로 겹겹이 쌓인 장단기 대외 리스크 외에 대만의 반도체 산업 약진도 심상치 않다. 

대표적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의 시가총액은 3년 전 삼성전자를 넘어섰고, 올해 예상 시장 점유율도 56%로, 삼성전자의 3배가 넘을 전망이다. TSMC를 등에 업고 지난해 대만 증시 전체 시가총액이 우리를 추월한데다 올해는 19년 만에 1인당 GDP까지 앞질러 아시아 맹주로 올라설 거란 관측도 나온다. 

대만 반도체 기업은 기술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고, 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과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대만 수출액의 37%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산업부 및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대만은 해마다 1만 명 정도의 반도체에 인력을 배출하고 있지만, 우리는 650여 명에 불과하다. 또 국내 메모리 반도체는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반도체 설계분야는 점유율이 1%로 미미한 실정이다. 

◇전문가 10명 중 6명 “반도체 위기2024년 후에도 이어질 것”

한편, 국내 반도체 전문가 10명 중 6명은 현재 반도체산업의 위기가 2024년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반도체산업 경기에 대한 전문가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 대부분(96.7%)이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위기 상황 직전이라는 응답 비율은 20%, 위기 상황이 아니라는 답변은 3.3%에 그쳤다. 

자료=대한상공회의소
자료=대한상공회의소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금세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 상황을 위기 혹은 위기 직전으로 진단한 전문가들에게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지 묻자, 58.6%가 내후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공급 과잉, 글로벌 수요 감소 및 재고 증가에 따른 가격하락, 중국의 빠른 기술추격,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 등의 리스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반도체산업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과거 반도체산업의 출렁임이 주로 일시적 대외환경 악화와 반도체 사이클에 기인했다면, 이번 국면은 언제 끝날지 모를 강대국 간 공급망 경쟁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기술추격 우려까지 더해진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지난주 애플이 메모리 반도체의 신규 공급처로 중국 YMTC를 낙점하면서 국내 반도체산업에 위기감을 안겨줬다”며 “낸드플래시 부문은 한중 간 기술 격차가 1∼2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와 미국의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칩4 논의’가 국내 반도체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36.6%,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46.7%로 나타났다. 큰 영향 없을 것이라는 응답 비중은 16.7%였다. 반도체법의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50%, 부정적이라는 답변이 40%였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칩4 대응 등 정부의 원활한 외교적 노력’(43.3%)을 꼽았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전체 수출의 5분의 1을 담당하는 반도체 수출이 감소한 상황에서 지난 주 정부가 ‘수출경쟁력 강화 전략’ 발표를 통해 반도체에 대한 기업투자와 인력양성을 약속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해외기술기업 투자·인수를 위한 특단의 제도 개선과 반도체 경쟁국 사이에서의 적극적이고 세련된 외교 등 반도체분야 초격차 유지를 위한 보다 근원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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