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SG 관련 규제 건수 추이.(단위: 건) 자료=보험연구원
글로벌 ESG 관련 규제 건수 추이.(단위: 건) 자료=보험연구원

[이코리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으로 인해 보험업계에도 ‘녹색금융’ 바람이 불게 되면서, 그린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 리스크에 노출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특히 각국 금융당국이 그린워싱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보험사들의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그린워싱’은 녹색(green)과 세탁(washing)의 합성어로, 실제와 달리 친환경 경영·투자를 한 것처럼 홍보해 기업 이미지를 친환경 이미지로 세탁하는 것을 뜻한다. 금융권에도 ESG 열풍이 불면서 녹색금융 관련 상품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그린워싱 리스크는 더욱 높아진 상태다. 

실제 도이치뱅크 계열 자산운용사 DWS는 지난 2020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전체 운용자산의 절반인 약 4590억 유로가 ESG 관련 자산이라고 발표했으나, ESG 기준에 적합한 펀드는 극히 일부였다는 사실이 전 책임자에 의해 폭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DWS는 미·독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DWS 그룹 최고경영자 아소카 뵈르만은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관련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 보험업계, ‘녹색보험’ 나설수록 커지는 그린워싱 리스크

보험업계 또한 ‘그린워싱 리스크’에서 예외는 아니다. 박희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22일 발표한 ‘그린워싱 위험과 보험산업 대응’ 보고서에서 “그린워싱과 관련해 보험회사는 언더라이팅 및 보험료 책정 등 위험의 인수 과정에서 그린워싱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보험업계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보험업계에서는 고객들의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험료 일부를 사회적 책임 또는 환경친화적 부문에 투자하겠다고 제안하거나, ‘지속가능성’ 또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신규 자회사를 설립하는 보험회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부 재보험사는 탄소배출권 대응방안(carbon credit solution), 탄소상쇄제도보험(carbon offset insurance) 등 특정 ESG 상품이나 자문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ESG나 친환경을 내세운 보험상품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예를 들어 NH농협생명은 올해 초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대중교통 사고 보장금액을 높인 ‘NH올바른지구 대중교통안전보험’, 친환경 차량의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무배당 NH올바른지구굿데이운전자보험’ 등을 연달아 출시했다. KB손해보험 또한 지난해 7월 전기차 특약 및 걸음 수 할인 특약 등을 담은 자동차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문제는 ESG 관련 보험상품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정작 명확한 기준과 정의는 여전히 정립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 연구위원은 “ ESG 상품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적인 정의가 없고 검증이 부족해 ESG 상품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기존 상품이 ‘친환경적’으로 재브랜딩되는 상황에서 친환경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ESG 관련 정보 공개가 투명하고 일관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ESG 관련 공개 데이터에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 및 정확도가 부족하고, 보험회사가 해당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 경우 문제가 가중될 수 있다”며 “일관성이 없고 부정확한 데이터는 ESG 또는 친환경적 목표를 가진 상품의 개발을 저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보험회사의 언더라이팅 및 보험료 책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국내 보험업계, 그린워싱 규제 강화 대응 나서야

이처럼 보험업계를 포함한 전 금융권이 그린워싱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각국 금융당국은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실제 유럽연합(EU)은 지난 2018년부터 인권, 환경 등 비재무적 정보의 공개 의무화를 위한 지침(NFRD)을 시행하고 있으며, 2020년 7월에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정의하고 범위를 분류하는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를 발표했다. 금융사들이 EU가 세운 녹색금융의 잣대에 따라 투자 대상을 선별하고 상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환경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지침서를 발표하는 등 글로벌 규제 강화 흐름을 뒤쫓고 있다. 금융위원회 또한 지난 1월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오는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ESG 공시 의무를 강화해 2030년부터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면서 금융당국의 그린워싱 규제도 강화되고 있는 만큼, 보험사들이 좀 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연구위원은 “보험회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규제 환경 변화를 파악하고, 기존의 거버넌스 및 상품 개발, 보험료 책정 프로세스를 고려하여 전체적인 과정에서 그린워싱 위험을 식별·관리하기 위한 통합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ESG 데이터 관련 분류체계를 정비하고,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각국의 규제당국은 그린워싱을 기업 및 기관의 자본적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상품 등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객과 투자자 및 이해관계자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경우 감독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며 “국내에서도 EU 등 선진국과 국제적인 정책 동향을 참고하여 지속적으로 관련 규제가 제정·발표될 것으로 보이므로, 보험산업은 이로 인한 영향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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