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역대급 집중호우로 인해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언론은 폭우로 인한 피해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정부의 후속 대응에 초점을 맞춰 비판을 제기하고 나섰다.

◇ 집중호우 보도, 핵심 키워드는 ‘윤석열 대통령’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폭우’와 ‘호우’ 두 가지 검색어를 통해 집중호우 관련 기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총 6877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수도권 집중호우가 시작된 다음 날인 9일에는 무려 1931건의 기사가 쏟아졌으며, 장마전선이 중남부로 이동한 10~11일에도 각각 1721건, 1520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지역명이나 부처명, ‘인명·침수 피해’ 등 호우 피해 관련 기사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를 제외하면 이번 집중호우 관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키워드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중대재난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실의 호우 대응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수도권에 지난 8일 자택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로 귀가한 뒤 집중호우가 내리기 시작해 인근 도로가 침수되자, 대통령실에 다시 출근하지 못한 채 이날 저녁부터 9일 새벽까지 자택에서 전화로 상황을 보고받고 업무지시를 했다가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지적을 받았다. 비가 잦아든 9일 서울 신림동 일가족 참변 현장인 반지하 주택에 방문해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가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반지하 주택 방문 현장 사진을 SNS 등에 올렸다가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곧 삭제했다. 

한겨레는 9일 사설에서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폭우라고는 하나, 재난 대처 태세의 문제점도 적잖게 드러났다”며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도 매우 실망스러웠다. 집중호우가 예보됐는데도 사전 경고나 위험 관리 조처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윤석열 대통령이 퇴근 뒤 집에 머물며 전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다든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밤 10시가 다 돼서야 시청에 복귀했다는 게 입방아에 오르는 것도 정부의 대처가 시민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며 “대통령실 쪽이 9일 ‘과거 정권 매뉴얼대로 한 것’이라며 반박하는 모습은 재난 상황에서 정부와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어떤 믿음을 줘야 하는지 모르는 듯 보여 걱정스럽다”고 꼬집었다.

경향신문 또한 이날 사설에서 “침수가 잦은 지역과 취약 시설물의 안전을 상시 점검·보강하고 재난 발생 초기부터 실시간으로 신속히 대처했더라면 이번 폭우 피해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폭우로 이동이 어려워진 탓에 사저에서 상황을 챙긴 것부터 위기 대처에 허점을 노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8~12일 보도된 집중호우 관련 보도의 연관 키워드 목록. 자료=빅카인즈
8~12일 보도된 집중호우 관련 보도의 연관 키워드 목록. 자료=빅카인즈

◇ 일부 언론, “재난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윤 대통령의 재난 대응에 대한 야권의 비판 공세에 대해, 자연재해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매체도 많았다. 한국일보는 11일 사설에서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그것대로 지적돼야 하지만 재난을 두고 벌어지는 과도한 정치 공방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며 “호우 당일인 8일 귀가한 윤 대통령의 행태를 둘러싼 공방은 상식 이하”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실시간 연락체계가 갖춰져 있다면 재난 초기 대통령 이동이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자택에서 상황을 지휘해도 큰 문제 없다는 대통령실의 반론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며 “이를 용산 집무실 이전 강행에 따른 출퇴근 리스크라거나, 혹은 ‘대통령이 스텔스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호우 피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치공세로 비칠 소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더욱 강경하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야권의 윤 대통령 비판에 대해“민주당 주장처럼 재난 현장에 매번 대통령이 다 가고 관련자를 경질한다면 세계 어느 정부도 1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2014년 세월호 사태를, 국민의힘은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정부 책임으로 몰아가는 등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며, “재난이 닥치면 사태를 수습하고 원인을 규명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어떻게 하면 이를 상대방 비난과 공격에 이용할지에만 몰두한다. 그 방식과 논리도 치졸하기 이를 데 없다. 부끄러운 줄 알고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 집중호우는 '기후재난', 취약계층 보호 대책 필요

한편 이번 집중호우를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으로 인식하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매체도 많았다. 중앙일보는 10일 사설에서 “이번 폭우는 흔히 기상 이변이라 부를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며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언제든지 벌어지고,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하늘을 탓할 게 아니라 정부의 자연 재난 대비 시스템을 이런 극단적 기상을 전제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이어 “정부는 기후재앙 시대에 잦아진 극단적 기상을 ‘뉴노멀’로 상정하고 재난 대비책과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며 “비가 그치면 금세 잊어버리는 일시적 땜질 처방이 아니라 재난 대비 인프라 투자를 늘려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취약계층이 기후재난으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받게 된다며,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한 연구조사는 동일한 기후재난이 발생해도 선진국 사망자 수는 개발도상국의 30%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취약계층은 재난 피해에서 회복하기 위한 보험 등 재정자원도 부족할뿐더러 안전한 주거와 식량·연료를 확보하는 데도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기후재난 양극화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지난 8일부터 수도권에 쏟아진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큰 피해가 난 가운데, 기후재난이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며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사건을 되짚었다. 한겨레는 “반지하 주택은 도로보다 낮은 곳에 있기에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 속수무책으로 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은 피할 새도 없이 화를 입을 수 있다”며 “반지하 거주자들에게 제대로 된 ‘주거 사다리’를 제공하는 정책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언련, “언론, 대통령 발언 검증 없이 받아 써...”

한편, 일각에서는 집중호우와 관련된 대통령실 발표를 언론이 검증 없이 ‘받아쓰기’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1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지난 9~10일 보도된 집중호우 관련 보도 중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한 기사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민언련은 윤 대통령의 ‘자택 전화 지시’ 논란과 관련해 다수의 언론이 대통령실의 반박을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고 꼬집었다. 실제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상황실”이라면서도 윤 대통령 자택에 위기 대응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는데, 민언련은 조사 대상 57개 매체 중 35개가 정치권이나 시민들의 비판 없이 대통령실의 설명을 그대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환경부에 하천 수위 모니터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가, 이미 6년 전 해당 시스템이 구현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민언련에 따르면, 62개 매체 중 윤 대통령 지시사항의 문제점을 지적한 곳은 12개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50개 매체는 검증 없이 대통령 발언을 그대로 보도했다.

민언련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이 ‘전원 구조’ 오보 이후 기자협회가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사실을 언급하며 “언론은 2014년 다짐을 잊기라도 한 듯,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 발언과 대통령실 발표를 사실 확인 없이 받아 썼다”라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이어 “대통령실 발표나 대통령 발언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쓰는 것도 노골적인 응원멘트처럼 ‘대통령의 응원단장’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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