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반지하 주택 창문 앞을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전날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건축을 전면 금지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도 순차적으로 없애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반지하 주택 창문 앞을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전날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건축을 전면 금지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도 순차적으로 없애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서울시가 지하·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서울 시내에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앤다. 이번 대책에 대해 누리꾼들과 시민단체는 환영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10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2012년 개정된 건축법 제11조(상습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축 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다)에도 불구하고 시내 반지하 주택이 꾸준히 건설돼 온 것에 따른 조치다.

실제로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10년에도 태풍 피해 대책으로 저지대 주거용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서울에서만 건물 1만2518동이 물에 잠기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후 2012년에는 건축법 개정으로 상습 침수 구역 내 지하층은 심의를 거쳐 건축 불허가를 할 수 있도록 됐다. 또 주택법에서도 30가구 이상 사업승인대상은 지하주택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다만 지상 1층과 연계된 복층형은 반지하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은 계속 지어졌고 통계청에 따르면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지난 2020년 기준 전국 32만7320가구에 달한다.

이번 안전대책 발표는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빌라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등 일가족 3명과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에 살던 5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대책 내용을 보면 서울시는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는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할 방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는 2020년 기준 전체 가구의 5% 수준인 약 20만 호의 지하·반지하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2012년 건축법 제11조에 '상습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심의를 거쳐 건축 불허가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으나 그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이 4만 호 이상 건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시는 앞으로는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을 불문하고 지하층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이번 주 중으로 건축허가 시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각 자치구에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할 계획이다.

둘째로 기존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해 이미 허가된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을 없애 나가겠다고 시는 밝혔다.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에는 더 이상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비주거용 용도 전환을 유도할 방침이며, 이 경우 건축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시는 근린생활시설, 창고, 주차장 등 비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 추진 시 용적률 혜택을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아울러 세입자가 나가고 빈 공간으로 유지되는 지하·반지하는 SH공사 '빈집 매입사업'을 통해 사들여 리모델링,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셋째로 상습 침수 또는 침수우려구역을 대상으로 모아주택,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한 빠른 환경 개선을 추진한다. 

이 지역 지하·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기존 세입자들은 주거상향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 또는 주거바우처 등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쪽방, 숙박시설 등에 거주하는 주거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상담을 거쳐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상향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번 달 안에 주택의 2/3 이상이 지하에 묻혀있는 반지하 주택 약 1만7000호를 우선적으로 현황 파악하여 대책을 마련하고 서울 시내 전체 지하·반지하 주택 20만호를 대상으로 전수조사,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위험단계(1~3단계)를 구분해 관리할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 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며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보호하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누리꾼들은 “10~20년이면 충분한 시간을 준다고 생각된다” “반지하에 사는 이들이 다들 사정들이 있고 그 사정을 정부와 지자체가 좀 챙겨주길 바란다” “단순히 기초수급자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삶의 터전이 바뀌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 될 것 같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1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지금도 서울에선 반지하 주택 건축 허가가 사실상 안 나니 문제는 없다. 반지하라는 형태가 주거공간으로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은 만큼 지하·반지하의 주거금지책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기존에 존재하는 반지하 주택은 단점들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매물이라는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기존의 반지하를 당장 비주거용으로 바꾼다는 식의 접근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 수도권의 폭우 피해에서 보듯이 도심 속 다가구, 다세대, 연립의 지층은 수해위험이나 정주의 질적 측면에서 주거로써의 기능을 줄여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일단 한 번에 지층 정주를 막기 어려운 만큼 지자체와 정부의 리모델링 지원이나 지층 거주 임차인에게 주거비(바우처)지원을 통해 좀 더 나은 주거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보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고질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주거상향지원사업 대폭 확대는 물론 여러 형태의 주거취약계층들에 대한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11일 논평을 통해 “이들 계층은 민간 시장에서 정상적인 양호한 주택을 구하기 어려워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인 거처를 탈출하기 어렵다”면서 “문제는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자체에 관심이 많지 않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보다 연간 3만호가 줄어든 연 10만호 수준으로 대폭 감소(이중 건설임대 연간 5만호→ 3만호 축소)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최저주거기준 미달과 지·옥·고 및 집이 아닌 집에 거주하는 약 230만에 달하는 주거 빈곤가구들이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주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장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확대하고 공공택지에 공공임대주택 공급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노후한 다가구·다세대 주택지 중심으로 반지하 주거공간에 대한 전면적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지하에 거주하는 세대에 대해 지방정부가 중앙의 지원 하에 주거 이전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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