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국민제안 갈무리
출처=국민제안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2012년 도입돼 올해로 10년 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소통창구인 국민제안 홈페이지에서 마트 의무 휴업일 폐지에 대한 온라인 국민 투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등 10개 국민제안을 지난 21일부터 온라인 투표에 부쳤다. 대통령실은 이달 말 투표를 합산해 높은 지지를 받은 상위 3건을 선정해 실제 국정에 반영할 방침이다. 

이날 오전 9시 8분 기준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제안은 39만1804건 ‘좋아요’를 받아 근소한 차이지만 10건의 제안 중 가장 호응이 많았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산업의 선진화와 유통기능의 효율화, 소비자 편익의 증진을 위해 1997년 제정됐다. 2010년대 들어 ‘지역 중소 상인과 전통시장을 보호하는 규제’ 기조를 시작으로, 전통시장 근처에 대형마트 출점 제한 및 매월 2회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 점차 규제의 강도가 세졌다.

골목상권 침해를 막고 전통시장과 상생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영업규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대형마트는 시장 구도가 온라인 대 오프라인으로 바뀌어 역차별을 받고, 소비자 불편만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대형마트 3사 점포 수는 지난 2019년 406곳에서 2021년 384곳으로 점포수가 줄었고, 이들이 운영하는 기업형슈퍼마켓도 1215곳에서 1103곳으로 쪼그라들었다. 업계에서는 2010년대 초반까지 높은 성장세를 이어온 마트업계가 주춤하게 된 계기로 월 2회 의무 휴업 규제를 꼽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를 규제로 반사 이익을 얻은 건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 쇼핑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상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의무 휴업해야 하는 반면, 쿠팡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은 온라인 주문과 배송에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에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가로막는 영업제한 조항 등 44건을 경쟁제한 규제로 선정해 개선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는 과연 효과를 거뒀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마트 휴무 시 쇼핑 대안을 묻는 질문에 “전통시장에 방문하겠다”는 응답은 8.3%에 그쳤다. 대신 슈퍼마켓(37.6%), 온라인 쇼핑(14.7%), 편의점(11.3%)을 찾겠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한국유통학회에 따르면 “마트 휴무일에 전통시장을 가겠다”는 응답(5.8%)보다 “쇼핑을 하지 않겠다(19.7%)”는 응답이 3배 이상 많았다는 답변이 나왔다. 마트를 누르니 전통시장이 떠오르는 긍정적인 풍선효과는 미약했던 셈이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의무휴업 한다고 시장가진 않는다” “심지어 근처에 재래시장도 없는데 쉬면 난감하다” 등의 누리꾼들의 반응도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발표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해 조사대상자의 67.8%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대형마트 규제에도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대답이 70.1%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마트 점포를 기반으로 한 10년 전의 규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공정한 경쟁 환경을 구축하고 소상공인 경쟁력을 강화해가는 방향으로 유통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25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전통시장 내 소상공인의 어려운 문제는 이해하지만 규제로만 풀 수는 없다. 규제라는 것도 수명이 있다”며 “소상공인의 자생력을 갖추라고 그간 마트 규제를 한시적으로 한 것인데, 이 정도면 시효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를 통한 비용과 이익이 있는데 이제 규제에 따른 이익도 작아졌다. 온라인이 커지면서 규제효과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당초 취지는 못 살린 채 대형마트 매출 감소, 중소협력업체 피해, 소비자 불편 등 부작용만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골목상권 보호는 헌법에 명시된 규범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된 바 있다”며 “적법성이 인정됐음에도 새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골목상권의 보호막을 제거하고 대기업의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연합회는 전경련이 지난해 발표한 소비자 인식 조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라고 응답한 소비자는 8.3%에 그쳤다. 총연합회는 “하지만 '슈퍼마켓을 간다'라는 응답은 37.6%였으며, 그 뒤로 전자상거래 이용 응답이 14.7%, 편의점 이용 응답이 11.3% 순”이었다며 “결국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을 포함해 슈퍼마켓과 편의점 등의 골목상권을 이용한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57.2%나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골목상권에는 전통시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의무휴업의 필요성을 입증한 조사라고 주장했다.

한편,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제도를 폐지 및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일에도 오프라인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려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회에는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이나 영업시간 제한에 상관없이 온라인 상품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고 반대로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더 강화하는 취지의 법 개정안들도 발의돼 있다. 구시대적 규제, 골목상권 보호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향후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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