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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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즉시연금 가입자와 생명보험사를 둘러싼 소송전에서 법원이 또다시 가입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미지급금 규모만 1조원에 달하는 만큼, 하반기 생보업계 전망에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8단독 이유형 판사는 지난 14일 김모씨 등 12명이 흥국생명, DGB생명, KDB생명 등을 상대로 제기한 즉시연금 미지급금 반환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보험사에 목돈을 맡긴 뒤 매달 연금을 지급받는 상품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일정 기간 연금을 받다가 만기에 원금을 환급받는 상속만기형 상품이다. 보험사는 만기환급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용수익 중 일부를 공제했으나, 가입자들은 보험사가 이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공제된 금액을 환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사와 가입자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지난 2018년 금융소비자연맹이 가입자를 모아 공동 소송을 진행했다. 결과는 생보사들의 참패다. 실제 교보생명, 동양생명,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이 연달아 1심에서 패소했고, 미래에셋생명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즉시연금 소송에서 법원이 연달아 가입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만기환급금 재원 마련을 위해 운용수익 일부를 공제한다는 내용이 ‘보험 약관’이 아닌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라는 별도 내부 규정에만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즉시연금 소송에서 패소한 생보사의 관련 약관 내용은 모두 대동소이하다. 농협생명만 즉시연금 상품 약관에 “가입 후 5년간 연금 월액을 적게 해 5년 이후 연금 계약 적립액이 보험료와 같도록 한다”는 내용을 명시해 유일하게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다. 

다만 약관에 해당 내용을 명시하지 않은 생보사가 승소한 판례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한화생명은 지난해 10월 즉시연금 소송 1심에서 승소했는데, 당시 법원은 산출방법서 또한 약관의 일부라고 판단해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는 공동소송이 아닌 가입자 개인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생보업계에서는 개인소송 결과가 공동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나, 미래에셋생명이 항소심에서 패소한 데 이어 흥국·DGB·KDB생명이 1심에서 패소하면서 더는 법원의 판단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국내 보험사의 즉시연금 가입자는 16만명으로, 미지급금은 분쟁조정위원회 권고 기준 최대 1조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이 가입자 5만5000명, 미지급금 4300억원으로 가장 많고, 그 뒤는 한화생명 800억원, 교보생명 750억원 등의 순이다. 이번 소송과 관련된 미지급금 규모는 KDB생명 249억원, 흥국생명 85억원, DGB생명 2억원 등 총 336억원이다. 

즉시연금 소송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생보업계 업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국내 생보사의 당기순이익은 1조39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조1555억원(△45.2%)이나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 삼성생명이 받은 삼성전자 특별배당 8019억원의 기저효과가 가장 큰 감소 원인이지만, 보험영업이익이 약 3000억원 감소하는 등 업황도 좋은 편은 아니다. 생보사의 1분기 수입보험료 또한 25조9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조8696억원(△10.3%) 감소했다. 

금리상승의 수혜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18일 보고서를 내고 “2분기 생명보험은 증시 부진의 영향으로 컨센서스를 하회할 전망”이라며 “변액보증손익 관련 헤지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0% 헤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리가 급등해 이익 방어를 위한 채권 매각도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이어 “현재 생명보험이 직면한 가장 큰 우려 요인은 신계약 감소와 시장금리 하락”이라며 “이를 반영해 전체적으로 이익 추정치와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소비자연맹은 이번 판결에 대해 “즉시연금 미지급 반환청구 공동소송의 원고승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며 “다른 보험사 공동소송 건에서도 당연히 원고 승 판결을 기대하며, 생보사들의 자발적인 지급을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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