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공정거래위원회, 입법조사처, 민변,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사진=김윤진 기자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입법조사처, 민변,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사진=김윤진 기자

[이코리아] 온라인플랫폼 규제 방향성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처럼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지만, 한국 상황에 어울리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참여연대, 민변 등은 온라인플랫폼 독점규제를 위한 미 입법 쟁점 토론회를 21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입법조사처, 민변,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한국의 온라인플랫폼 규제입법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다른 국가와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적절한 규제 수위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자율규제' 기조, 바람직할까?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은 현 정부에서 사실상 폐기 수순”이라며 “이런 입법 공백 속에서 플랫폼들은 기술력과 데이터로 무차별적으로 사업을 확대 중”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배 의원은 이어 “업계는 자율규제를 통해 자정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규제에 국민적 공감대가 쌓인 만큼 이제 입법이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마땅한 규제가 없고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제일 큰 문제는 데이터 독식인데, 정부는 자율규제 원칙을 내세우고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온라인플랫폼 규제는 중요한 이슈다. 적절한 규제가 없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피해가 커진다는 시각, 자국 플랫폼을 육성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갈리는 상황이다.

발제를 맡은 민변 서치원 변호사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주요 규제법안에 대해 소개했다. 미국 하원 의회에서는 5가지 패키지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유럽의 경우 디지털시장법을 추진 중이다.

서 변호사는 “미국과 유럽 법안들의 공통점은 이용자 수나 시가총액 등 정량적 지표를 넘은 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지정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은 10년, 유럽은 2년마다 갱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를 통해 플랫폼에 부과하려는 의무는 대표적으로 기업결합 신고가 있다. 미국은 기존에는 경쟁 저해 가능성을 반독점당국이 판단했지만, 앞으로는 사업자가 입증하는 식으로 변경하려는 모양새다.

유럽도 기업결합 조건을 강화하는 기조다. 기업결합 신고 시 매출뿐 아니라 시장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자료 전체를 요구한다.

서 변호사는 “미국은 기업에 사업 매각을 명령하는 등 구조적 조치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며 “유럽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인식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관련 법이 시행되면 7000여 개 기업이 적용을 받는데, 한국도 따라가는 것이 표준화의 지름길”이라며 “한국은 자율규제로 방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독점규제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등 경쟁질서 회복 차원에서 법제화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입법조사처, 민변,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사진=김윤진 기자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입법조사처, 민변,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사진=김윤진 기자

◇공정위 "미·EU와 국내 상황 달라, 독점규제 신중해야"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 선중규 총괄과장은 규제 필요성에 관해서는 공감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규제 방향을 따를지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 과장은 “국내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수준으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혁신을 위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며 “미국과 유럽의 공통점은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 사전규제에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처럼 정량적으로 규제 대상을 지정하면 신속한 규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한국과 시장 구조가 달라 참고하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 과장은 “미국과 유럽은 GAFA가 모든 온라인플랫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그런데 한국은 검색엔진과 오픈마켓 등 여러 업종에서 경쟁 구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정책 취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이 법안을 만들며 기존 정책이 소비자 후생만 고려해서 GAFA가 시장을 독점할 때까지 손을 쓸 수 없던 게 아니냐는 고민을 했다”며 “반면 한국은 이미 소비자 후생 외에 다른 요소도 고려한 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혁신과 규제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적절한 독과점 규제는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자율규제 방향성을 제시하기 전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했어야 한다고 지적도 나왔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정수정 연구위원은 “새 정부의 독점규제 방향은 지난 정부와 차이가 극명하다”며 “이번 정부에서는 행정규제에서 자율규제 중심으로 180도 달라졌는데, 이렇게 크게 기조를 변경할 때는 시장 참여자 의견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이어 “자율규제가 작동하려면 이해관계자 간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소비자와 사업자가 대등한 관계인지 의문”이라며 “게다가 자율규제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에는 어떻게 대응할 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토론 내용을 들은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은 자율규제보다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새 정부 들어 자율규제를 말하는데, 이미 ‘네카라쿠배’ 등이 독과점 지위를 누리고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며 “온라인플랫폼들은 제조업까지 흡수하는 등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데,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 정부 체제에서 온플법 추진이 지지부진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간에 영역 다툼이 있었다”며 “국회에서도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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