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시아 성향 소셜미디어에서 부차 학살 조작설의 근거로 사용되는 영상. 러시아측은 시신의 손이 움직였다고 주장했으나,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는 차량 앞유리 얼룩과 시신이 겹쳐지면서 발생한 착시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친러시아 성향 소셜미디어에서 부차 학살 조작설의 근거로 사용되는 영상. 러시아측은 시신의 손이 움직였다고 주장했으나,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는 차량 앞유리 얼룩과 시신이 겹쳐지면서 발생한 착시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이코리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주의 소도시 부차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벌인 학살극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조작극이라며 학살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외신의 팩트체크를 통해 조작설의 허위가 드러나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의 민간인 학살 의혹을 부인하며 “우리는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선전전 기구가 사전에 계획한 것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또한 5일 러시아 현지 TV 연설에서 부차 학살 의혹은 서방의 ‘위조’라며 “명백히 사실이 아닌 도발의 목적은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을 망칠 구실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부차 학살 의혹을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현지 영상 및 사진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시신 사진을 보면, 최소 4일이 지났음에도 경직되지 않았고 시신에서 나타나는 얼룩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러시아 성향의 소셜미디어 및 캐나다 주재 러시아 대사관 등도 부차 시내 곳곳의 민간인 시신을 촬영한 영상에서 시신이 움직이는 모습이 발견됐다며, 이는 조작된 영상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관련 영상을 느리게 재생하면 시신의 손이 움직이고 촬영 차량이 지나간 뒤에는 일어나 앉는 모습이 확인된다며, 부차 학살은 우크라이나에 의해 연출된 가짜뉴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팩트체크에 나선 주요 외신들은 현지 영상이 조작됐다는 러시아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BBC는 지난 6일 해당 영상을 분석한 결과, 시신의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차량 앞유리 오른쪽 아랫부분에 묻어있는 얼룩 때문에 발생한 착시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빗방울이나 먼지로 추정되는 얼룩과 시신이 겹쳐지면서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는 것. 

또한 BBC는 차량이 지나간 후 오른쪽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시신의 모습이 일어나 앉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영상을 느리게 재생해보면 사이드미러가 시신 뿐만 아니라 주변 주택의 모습까지 왜곡시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BBC는 해당 영상에 나온 시신의 모습을 게티이미지 및 AFP통신이 지난 3일 공개한 고해상도 사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BBC가 공개한 사진과 조작설의 근거가 된 영상은 시신뿐만 아니라 주변 도로 및 연석, 자동차 등의 모습도 일치한다. 러시아 측의 주장대로 해당 영상이 살아있는 사람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면 2일 공개된 영상과 3일 공개된 사진의 현장 모습이 완전히 일치하기는 어렵다. 

부차 학살이 조작됐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반박하는 또 다른 증거는 위성사진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위성업체 맥사(Maxar)는 러시아가 부차를 점령하고 있던 3월 19일의 위성사진을 최근 공개했다. 해당 위성사진에는 거리 곳곳에 시신이 놓여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NYT는 이 지역 지방의회 의원이 지난 1일 차량을 타고 해당 지역을 이동하면서 촬영한 영상과 위성사진을 비교·분석했는데, 동영상과 맥사의 위성사진에 나타난 시신 최소 11구의 위치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는 러시아군이 해당 지역에서 철수한 3월 30일 이후 우크라이나가 시신을 거리에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철수 이전에도 이미 시신이 길거리에 놓여있는 모습이 폭로되면서 조작설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친러시아 성향의 소셜미디어가 주장하는 또 다른 음모론은 ‘마네킹’ 연출설이다. 최근 친러시아 성향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있는 한 영상에는 군복을 입은 두 남성이 마네킹에 접착 테이프를 감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해당 영상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연극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TV 러시아24 또한 해당 영상을 소개하며 부차 학살은 연출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외신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아예 우크라이나에서 촬영된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러시아 텔레비전 프로그램 조감독인 나제지다(Nadezhda)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당 영상이 지난달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방에서 행인에 의해 촬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사람이 건물에서 자동차 위로 떨어지는 스턴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마네킹을 활용했는데, 촬영 현장을 지나던 행인이 스태프들이 마네킹을 조작 중인 장면을 촬영했다는 것. 유로뉴스는 러시아 IT기업 얀덱스(Yandex)의 공개 이미지를 통해 마네킹이 촬영된 영화 세트장이 실제 상트페테르부르크 근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조작설이 허위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초 친러시아 성향의 소셜미디어는 시체 가방이 늘어선 영상을 퍼뜨리며, 우크라이나가 배우들을 동원해 학살극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에는 시체 가방 속에 들어있는 시신이 움직이고, 그 앞을 촬영 스탭으로 보이는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지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CNN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환경단체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목적으로 촬영된 영상을 조작설을 퍼뜨리기 위해 악의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한편 주요 외신의 적극적인 팩트체크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유엔(UN) 총회는 지난 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특별회의를 열고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를 결정했다. 국제여론에서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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