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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도심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올해 주요 기업 10곳 중 4곳이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8월부터 이사회를 한쪽 성으로만 채우지 못하게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여성 사내이사 비율은 여전히 적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생색내기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일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 169개 중 주총 소집결의서를 제출한 12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번 주총을 통해 새로 선임되는 사외이사 104명 가운데 여성이 45명으로 전체 43.3%를 차지했다. 

하지만 주로 내부에서 승진해 발언권이 강한 사내이사는 전체 73명 가운데 여성이 2명으로 2.7%에 그쳤다. 전체 등기임원 중 여성 비중은 지난해 3분기 8.2%에서 올해 11.2%로 소폭 증가하게 된다. 

또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요 대기업 42곳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17곳이 18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재·신규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분야별로 보면 화학사가 6명(LG화학·포스코케미칼·롯데정밀화학·OCI·한화솔루션)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공업 4명(삼성엔지니어링·삼성전기·LG이노텍·LG디스플레이) ▲방산 3명(현대로템·LIG넥스원·한화시스템) ▲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지주(GS·HD현대) 2명,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가 1명 등이었다.

10대 그룹 상장사 여성 사외이사의 경우 총 74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사외이사 중 약 20%로, 지난해보다 8%포인트 가량 늘었다. 기업들이 여성 사외이사를 적극적으로 선임하는 이유는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법과 관련이 크다는 분석이다.

오는 8월 5일부터 12월 결산 법인 중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상장기업의 이사회를 한쪽 성으로만 구성하지 못하는 자본시장법이 시행된다. 여기에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ESG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앞 다퉈 전문성 있는 여성들을 이사로 영입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여성 사내이사 비율은 여전히 적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생색내기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올해 2월에 발표된 세계 4대 회계법인인 딜로이트 자료를 보면 국내 상장회사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은 4.2%로 세계 평균(19.7%)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한국은 카타르(1.2%), 사우디아라비아(1.7%), 쿠웨이트(4%)에 이어 꼴찌에서 네 번째였다. 성차별이 심한 중동 국가 수준이라는 뜻이다. 

세계 유수의 투자자본들은 이사회의 다양성을 주요 투자조건으로 고려하고 있다. 앞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이사회 다양성 비율이 30%를 넘는 기업만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시총 1위 애플의 경우 CEO인 팀 쿡은 동성애자이고, 캐나다 출신 여성운동가 안드레아 융을 비롯해, 이사회 9명 중 3명이 여성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렇게 이사회를 다양하게 구성하는 건 꼭 도덕적 의무 때문만은 아니다. 성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메리츠증권이 2018년에 선보인 '더 우먼 펀드'의 경우 여성 참여가 활발한 국내 기업 30여 곳을 골라 장기 투자하는데, 지난해 12.8%의 수익률을 냈다. 코스피 평균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자본시장법 개정과 더불어 산업계의 여성권리 신장과 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한 노력은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평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5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의 의미는 좀 더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성별에서 인재들이 사회에 진출해 보다 다양성이 존중받고 여성들의 전문성이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라며 “변협에서도 좀 더 전문성 있는 업계 여성 사외이사 후보진을 추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국내 여성임원 비율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뒤쳐진 게 맞지만 경력단절 등 여성사회활동 비율이 낮아 후보군이 적은 영향이 컸다”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보니 모든 부분을 강제할 수 없으나 밖에서부터 이런 여성사외이사의 전문성이 발휘되다보면 자연스레 사내 임원진 비율에서도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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