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중고차 시장.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 한 중고차 시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현대자동차, 기아 등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관련 논의를 시작한 지 3년만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생계형적합업종 심의위원회는 17일 대기업의 중고차 소매시장 진출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자동차나 기아차 같은 완성차 대기업도 중고차 매매업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위원회는 “기존 중고차 업체들의 매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소상공인 비중이 낮아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요건인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뢰성을 확보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등 소비자에게도 더 이로워질 수 있단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존 업계 피해는 예상되는 만큼 향후 중소기업 사업조정 심의회가 적정한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고차 사업은 도매사업과 소매사업으로 분류된다. 도매사업은 중고차 매매업자 등에게 중고차를 파는 사업이고, 소매사업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중고차를 파는 사업이다. 

그중 중고차 소매사업은 2013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2019년 2월 보호기한이 만료됐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가 다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며 3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다가 이번 심의위에서 '미지정' 결론이 나오면서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중고차 이전등록 대수는 395만대로 신차등록대수 191만대보다 2배 더 많았다. 연간 중고차 거래액만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중고차 시장의 거래대수는 2021년 국내 신차 판매 대수 144만대를 크게 넘어서는 것이다.

대기업 중고차시장 진출의 명분은 투명성 제고다. 소비자들의 중고차시장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황에서, 중고차 품질에 대한 인증능력, A/S 역량을 갖춘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사업 진출을 허용해 소비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이 2020년 발표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0.5%가 중고차 시장의 불투명, 혼탁, 낙후된 이미지라고 응답했다. 또한 이와 같이 응답한 소비자의 31.3%는 가격산정방법에 대한 불신을, 31.1%는 허위미끼 매물을, 25.3%는 주행거리 조작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미 국내 중고차 소매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있다. 2013년 이전부터 사업을 하고 있던 케이카, 엔카닷컴은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중고차 소매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등은 수입차에 대한 인증중고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해졌지만, 당장 시작할지는 미지수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이미 경기 용인시와 전북 정읍시에 각각 자동차 매매업 등록 신청을 하고 구체적 계획도 발표한 상태다. 

하지만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현대차 및 기아에 대해 올해 1월에 사업조정을 신청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현재 당사자 간 자율조정이 진행 중으로 중소기업피해 실태조사 이후 사업조정심의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새롭게 중고차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된 현대차와 기아, 이미 도매 중고차 사업을 영위해온 현대글로비스의 수혜가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왔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기존 사업의 규모가 커서, 중고차 사업이 전사 실적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완성차 업체가 자기 브랜드 중고차를 점검하고 수리하여 성능을 인증하면, 자기 브랜드의 중고차 가격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상 중고차 가격이 높아지면 신차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수혜가 돌아가며, 따라서 신차 가격도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5사의 중고차 시장 점유율은 2026년 기준 7.5~12.9%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의 경우 2024년까지 시장 점유율을 5.1%로 자체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국내 중고차 시장의 규모(연간 30조원)를 고려할 때, 현대차의 향후 중고차 사업 매출액은 1조 5000억원 정도로 추정한다”면서 “내수 시장에서의 현대차와 기아의 UIS(가동중인 차량 대수)의 비율이 1:0.6정도임을 감안해 기아의 잠재적인 중고차 사업 매출액은 9000억원 수준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이미 도매 중고차 사업을 영위해온 현대글로비스의 수혜도 전망했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2021년 도매 중고차 경매(오토비즈사업) 등에서 7332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 

강 연구원은 “현대글로비스의 소매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으나, 해외에서 이미 영위중인 소매 중고차 사업 역량을 활용해 국내 소매업에 진출할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온라인 중고차 중개 플랫폼인 오토벨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될 경우 국내 온라인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되는 수혜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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