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즉시연금 미지급 소송의 첫 항소심에서 법원이 가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생명보험사들이 즉시연금 소송에서 줄지어 패소한 가운데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내려지자 보험업계에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항소)(나)재판부, 박남천 재판장·박준민·이근수)는 미래에셋생명 즉시연금 가입자 김모씨 등 2명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미지급연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고, 미래에셋생명의 항소를 전부 기각했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보험사에 목돈을 맡긴 뒤 매달 연금을 지급받는 상품이다. 이번 소송의 경우 일정 기간 연금을 받다가 만기에 원금을 환급받는 상속만기형 상품이 문제가 됐다. 보험사는 만기환급금 지급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매달 지급해야 할 연금에서 일부 금액을 공제했는데, 가입자들은 보험사가 이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공제된 금액을 환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또한 2018년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보험사들이 약관에 연금액 산출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보험사에게 미지급금을 지불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즉시연금 상품을 판매한 생보사들이 분조위 권고를 거부하면서 가입자와의 갈등이 악화됐고, 결국 2018년 금융소비자연맹이 가입자들을 모아 즉시연금 미지급금 반환청구 공동소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교보생명, 동양생명, 삼성생명, 한화생명이 연달아 1심에서 패소했으며, 항소심에서 패소한 것은 미래에셋이 처음이다. 

물론 NH농협생명처럼 보험사가 승소한 사례도 있다. 대부분의 보험사가 비슷한 내용의 즉시연금 약관을 사용하는데, 농협생명은 약관 내용이 조금 달랐기 때문. 실제 농협생명은 약관에 “가입 후 5년간 연금 월액을 적게 해 5년 이후 연금 계약 적립액이 보험료와 같도록 한다”며 공제 사실을 명시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도 다른 보험사와 달리 농협생명은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삼성·한화생명도 즉시연금 관련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실제 법원은 지난해 지난해 10월 13일 즉시연금 가입자 윤모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삼성생명의 지급 의무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한화생명 또한 이날 가입자 김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소송에서 승소했다. 

다만 이 경우는 농협생명의 승소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삼성·한화생명이 승소한 것은 가입자 개인이 제기한 소송으로, 이미 즉시연금 공동소송에서는 패소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공동소송과 달리 개인소송에서 재판부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준 이유다. 보험사들은 약관에 공제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산출방법서에 관련 내용을 포함했기 때문에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왔으나, 공동소송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입자 개인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재판부가 산출방법서 또한 약관의 일부라고 판단해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 때문에 삼성·한화생명의 승소가 향후 공동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9일 미래에셋생명이 공동소송 항소심에서 다시 패소하며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금감원이 지난 2018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의 즉시연금 가입자는 16만명으로, 미지급금은 분조위 권고 기준 최대 1조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이 미지급금 4300억원, 가입자 5만5천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는 한화생명(8000억원) 교보생명(750억원) 등의 순이다. 

다수의 가입자가 참여한 공동소송에서 법원의 판단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보험사들은 해당 미지급금을 가입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실제 삼성생명은 지난해 2분기 즉시연금 패소를 대비해 280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해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3.9%나 하락한 바 있다. 패소에 따른 실적 하락은 피할 수 없다는 것. 미래에셋생명의 항소심 패소로 인해 생보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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