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경선에 나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중도성향 유권자들에게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마이클 블룸버그 선거캠프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민주당 경선에 나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중도성향 유권자들에게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마이클 블룸버그 선거캠프 홈페이지 갈무리

혼전 양상의 미국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고전 중인 가운데,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유력한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현재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가진 유권자들이 블룸버그 전 시장에게 모이는 모양새다.

◇ 트럼프 이기려면? 샌더스 말고 블룸버그

뒤늦게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블룸버그 전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진 후보라는 점이다. 현재 민주당 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샌더스 의원의 경우 진보적 정치성향과 급진적 정책공약으로 인해 대선 구도에서 중간층의 표심을 잡을 확장성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블룸버그 전 시장은 낙태·총기규제 등에서는 민주당 주류의 진보적 입장을 지지하지만, 정치·경제·안보 등에서는 비교적 중도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원하지 않지만, 샌더스 의원이 추구하는 변화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블룸버그 전 시장은 바이든 전 부통령을 대신할 좋은 대체재다. 

부티지지 전 시장 또한 상대적으로 짧은 정치경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반면 블룸버그 전 시장은 세계적인 미디어그룹 블룸버그LP를 창업하고 뉴욕 시장으로 3선에 성공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안정감있는 트럼프 대항마를 찾고자 하는 유권자들에게 블룸버그 전 시장은 연륜있는 중도 후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블룸버그 전 시장 또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후보는 자신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열린 민주당 경선 TV 토론에서 블룸버그 전 시장은 “오늘 우리는 ‘누가 트럼프에게 승리할 수 있는가’, ‘누가 백악관에서 업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한가’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며 “내가 이 두 가지에 가장 가까운 후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이어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샌더스 의원에 대해 “그가 대선후보가 되면 우리는 다시 4년간 트럼프를 지켜봐야 한다. 이는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도 샌더스 의원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블룸버그 전 시장에게는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람들이 버니의 메시지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그에게는 에너지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19일 트위터에서는 “부패한 블룸버그 뉴스가 미니 마이크(블룸버그 전 시장의 작은 키를 비하한 표현)가 얼마나 한심한 토론자인지, 그가 농민들을 존중하지 않고 사악하게 뇌물을 뿌리며 선거자금법을 위반했는지 이야기할까”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두 민주당 경선 후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그가 샌더스 의원보다 블룸버그 전 시장과의 양자 대결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지난 3개월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한 민주당 경선 후보 지지율 추이.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주황색)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자료=리얼클리어폴리틱스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3개월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한 민주당 경선 후보 지지율 추이.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주황색)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자료=리얼클리어폴리틱스 홈페이지 갈무리

◇ 블룸버그, 인종·성차별 논란에 발목잡힐까?

물론 블룸버그 전 시장에게도 약점은 있다. 우선 바이든 전 부통령 또한 겪은 바 있는 인종·성차별 논란에서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블룸버그 전 시장은 과거 블룸버그LP에서 여성 직원에 대해 차별적인 문화를 조성하고 임신한 여직원에게 “죽여버려(Kill it)”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종차별 문제도 심각하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과거 뉴욕 시장 재임 시절 ‘신체 불심검문(Stop and Frisk)’ 강화정책을 시행한 이력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살인자의 95%는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 그들은 16~25세 남성이며 소수 인종이다”라고 말한 녹음 파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과거 불심검문 강화정책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뉴욕 시장 선배인 루디 줄리아니는 16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블룸버그가 불심검문 정책을 비난하다니 무슨 말인가”라며 “지금은 그가 불심검문 정책을 비판하지만, 당시에는 100% 지지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22일 3차 경선이 열리는 네바다주의 경우 히스패닉 유권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29일 경선이 열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또한 흑인 유권자 비중이 높다. 자칫 첫 경선 무대에서 인종차별 문제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게 될 경우 블룸버그 전 시장에게 모인 기대감이 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도 인종차별 이슈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경선 과정 내내 상대 후보들에게 약점을 노출한 채 불리한 싸움을 반복해야 한다.

◇ 블룸버그 첫 시험대, 네바다·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결과는?

게다가 샌더스 의원의 지지율이 정체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ABC뉴스의 전국 여론조사에서 샌더스 의원의 지지율은 32%를 기록한 반면 바이든 전 부통령과 블룸버그 전 시장은 각각 16%, 14%에 그쳤다. 지금까지 20%대에 머물렀던 샌더스 의원의 지지율이 30%를 넘어섰다는 것은,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샌더스 의원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만약 확장성 부족으로 공격을 받았던 샌더스 후보가 네바다·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연이어 선전을 펼친다면 “샌더스로는 트럼프에게 이길 수 없다”는 블룸버그 전 시장의 주장도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또한, 비슷한 성향의 바이든 전 부통령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중도층의 표가 양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중도대안’으로서 경선 레이스에서 성공적인 출발을 알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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