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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미갈루’라는 이름의 혹등고래가 목격될 때마다 언론에서 톱으로 다룰 만큼 화제가 되곤 한다. 호주 원주민 언어로 ‘하얀 친구’라는 뜻을 지닌 미갈루는 선천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결핍된 알비노종의 흰색 혹등고래다.

모든 알비노 동물들이 그렇듯이 미갈루가 자연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어릴 때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쉬울 뿐더러, 햇빛 노출 및 시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8살로 추정되는 미갈루는 지난 25년 동안 거의 매년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부근의 혹등고래 번식지에서 목격되고 있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호주 북동쪽 해안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다. 무려 총길이 2000㎞에 달하는 산호초가 파푸아뉴기니까지 뻗어 있는데, 우주에서도 관측이 가능한 지구상의 유일한 유기체다. 면적 20만7000㎢, 너비 약 500~2000m인 2900여 개의 개별 산호들은 모양도 매우 다양해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호주 북동쪽 해안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해조류가 서식해 3000㎢가 넘는 해초밭을 이루고 있다. 이 해조들은 생산성이 매우 높아서 거북, 어류, 연체동물, 성게 등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한다. 때문에 이곳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도 유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거북 7종 중 6종이 이 지역에서 서식하며, 특히 푸른바다거북의 번식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해면 400종과 연체동물 4만종이 서식하며, 듀공을 비롯한 포유류 30종과 조류 200여 종이 산다. 미갈루가 왜 이곳을 마지막 남은 안전지대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이곳은 문화적 가치도 매우 높다. 수많은 조개무지와 거대한 물고기 덫, 원주민들의 다양한 고고학 유적지가 이 지역에서 발견됐다. 특히 리저드 섬과 힌친브룩 섬에 많은데, 수준 높은 암각화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과학적인 연구 목적으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방문한 과학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겉에서 보는 것보다 산호초들의 폐사 현상이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흔히 산호라고 하면 식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산호는 알을 낳는 하등동물이다. 산호초는 이 같은 산호충들이 만들어내는 외골격이다. 무수히 많은 산호충들이 분비한 탄산칼슘은 가지나 부채, 공 모양이 되며, 이것들이 수천년에 걸쳐 서로 결합되면서 산호초를 이룬다.

산호충은 식물성 플랑크톤인 미세조류와 공생한다. 조류는 산호충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삼으며, 산호충은 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생산하는 당분을 얻는다. 산호초를 주로 수심 50m 이내의 얕은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공생관계 때문이다. 조류가 광합성을 해야 하므로 산호충도 햇빛이 통과하는 얕고 맑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산호충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그들의 세포 속에 살면서 영양분을 제공하고 화려한 색깔을 내는 조류들을 쫓아내고 있다. 이로 인해 산호가 분필처럼 하얗게 변하는 ‘산호 표백’이라는 백화 현상이 일어난다.

산호충이 받는 스트레스의 주원인은 바로 바다 수온의 상승이다. 엘니뇨 현상으로 바다 수온이 급격히 상승할 때마다 많은 산호초들이 백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올해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사상 최악의 백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가 잇달아 발표됐다.

지난 4월 호주 제임스 쿡 대학 연구진은 헬기 촬영 결과 이곳 산호의 93%에서 탈색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미 절반에 이르는 산호가 죽거나 죽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호주 국립 산호초 백화대책위원장인 테리 휴즈는 크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오염이 가장 덜 된 지역을 헬기로 날며 관찰했는데 표백 현상이 목격되지 않은 산호초가 단 4개뿐이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점점 속도를 더해가는 지구온난화다. 산호초들은 수온이 다시 내려갈 경우 원래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지만, 수온 상승 기간이 길어지면 집단적으로 폐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산호초의 백화 현상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8년 이후부터 전 세계의 산호초에서 백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관찰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산호초 깊이 구멍을 뚫어본 결과, 지난 수천년 동안 그런 현상이 일어난 적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즉, 산호의 백화는 최근의 기후변화와 맞물려 일어난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산호초는 생태계 다양성 측면에서 핵심종으로 꼽힌다. 산호초가 수많은 다른 생물종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연구에 의하면 물고기들이 잘 번식하는 세계적인 어장의 1/4이 산호초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태평양제도에 사는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의 약 70%를 산호초 지역으로부터 얻는다.

매년 11월이 되면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전 세계의 잠수부들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로 몰려든다. 이때가 산호의 산란기여서 분홍빛 알과 정충을 무수히 방사해 바닷속이 온통 분홍빛 눈보라 속에 갇힌 절경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호초의 백화가 심각해지면 이 같은 절경을 감상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호주의 동물 스타 미갈루도 더 이상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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