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러시아월드컵 메인 경기장인 모스크바 루주니끼 스타디움에서 월드컵 개회식이 개최되었다. 모스크바는 6월에도 시원한 편이지만, 월드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뜨거워 아이슬란드의 전 국민 중 1%는 아예 러시아로 원정 응원을 떠났다. 러시아 월드컵은 7월15일까지 한달간 러시아의 쌍트 페테르부르그, 깔리닌그라드, 니즈니 노브고르드, 모스크바, 까잔, 사란스까, 사마라, 볼고그라드, 로스또프, 소치 10개 도시에서 개최된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선수들은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가 장착된 운동복을 입게 되어, 선수들이 뛰어다닌 거리가 자동으로 계산되고, 축구공에는 무선칩이 탑재되어 파울라인이나 골라인을 넘었는지도 자동으로 측정된다. 37개의 카메라와 연결된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은 심판이 찾아내지 못하는 파울을 찾아내기도 한다.

러시아는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에 대응하던 한축이었으며, 현재도 국가GDP순위가 9위를 차지할 정도의 강국이다. 한국인들의 관심이 크지는 않지만 러시아는 부인할 수 없는 기초 과학기술분야의 선진국이다. 소련이 1991년 붕괴하자 한국의 기업들은 발 빠르게 다수의 러시아 기술을 획득했고, 러시아 기술자들을 모셔오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는 월드컵 열기가 가득한 러시아가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사진 출처 = 러시아 스콜코보혁신센터 홈페이지>

러시아의 국가기술이니셔티브

러시아도 제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세계적인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푸틴은 2014년 기술혁신 관련 계획을 언급하였고, 푸틴정부는 2015년 ‘국가기술이니셔티브’를 작성하였다. 이 이니셔티브는 2030년대에 관련 분야에서 러시아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군사와 항공우주분야이다. 러시아의 탱크들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경사진 포탑, 가벼운 차체 등 향상된 설계로 두꺼운 장갑의 독일의 전차군단에 효율적으로 맞설 수 있었다. 현재의 러시아의 제트기들은 에어쇼에서 관중석 앞에서 기체를 공중 정지시키는 코브라 기동을 보여줄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다만 S7항공사나 아에로플루트항공사는 시장 확대를 위하여 수호이항공기 이외에도 보잉과 에어버스 항공기를 다수 구매하기도 한다.

러시아는 우주항공분야의 강국으로 그동안 무인발사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과거 러시아와의 패권경쟁에서 이기고 달에 먼저 가기 위하여 GDP의 5%나 되는 막대한 돈을 우주개발에 쏟아 부었다. 미국과 지속된 경쟁으로 러시아측의 항공우주 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동안 러시아의 우수한 발사기술과 저렴한 발사비용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았으나, 최근 스페이스X등이 개발한 발사체 재활용기술이 러시아의 우주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는 해양수송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이 분야에서도 점유율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의 뜨란자스는 항행산업의 주요 기업으로 이미 항해용 디지털지도시장과 선박항해관리 시스템 부분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항공이나 항행시스템과 달리 러시아의 자동차는 세계시장에서 그리 각광을 받고 못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대우그룹은 1990년대 구소련의 우즈베키스탄에 자동차공장을 설립했는데 현재 GM은 우즈벡 승용차 시장에서 95%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트럭제조사 까마즈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까마즈는 '코그니티브 테크놀로지'와 협력으로 이미 자율주행 트럭을 개발하였고, 자율주행 트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산업

에너지부문은 현재 러시아 정부의 재정수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중요한 산업이다. 푸틴은 최근 부적절하게 분배되었던 일부 에너지 민영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상실했던 경제력을 회복했고, 러시아 내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의 에너지산업을 가스를 판매하는 가즈프롬, 석유을 취급하는 로스네프트, 송유관을 운영하는 뜨란스네프뜨로 재편했다. 이중 가즈프롬은 러시아월드컵에서 주된 스폰서로 활약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 러시아의 에너지분야 기술로드맵은 생산된 전력의 효율적인 분배와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설비진단에 집중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보일러 업체들이 제조한 사물인터넷(IOT) 보일러가 이미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개최된 북미정상회담 이후 활기를 띄고 있는 환동해경제벨트 구축사업은 한국과 러시아가 에너지와 관광, 자원분야에서 이익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한국은 에너지분야에서 2조원 정도의 비용으로 러시아 가스관을 한국내로 연결하는 사업과 한·중·일·러·몽고의 전력망을 연결하고 효율적으로 전력을 배분하는 스마트그리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블록체인 분야 연구 개발 활발

러시아는 전통적인 군사강국으로 보안기술 분야에서는 선진국이다.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카스퍼스키 랩’은 2016년경 해커들이 방글라데시 은행계정에서 800여억원을 인출하는데 북한이 연계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오랫동안 데이터복구 관련 업무에 종사했는데, PC3000 등의 핵심 솔루션은 러시아에서 생산된다. 하드디스크는 씨게이트, 웨스턴디지털, 히타치, 도시바, 삼성전자 등에서 생산되어 왔지만, 러시아기업은 리버스 엔지니어링 기법으로 일찌감치 각종 하드디스크나 플래쉬메모리를 분석하였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고 데이터를 복구하는 솔루션을 만들어냈다. 러시아는 최근에는 IT 분야의 기술력을 활용하여 블록체인 산업에도 활발히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기술도약에 발맞추어 세계최대의 IT전시회 개최사인 세빗(Cebit)은 2019년 러시아에서도 세빗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광활한 영토라는 단점으로 현재 러시아에서는 68%를 조금 넘는 인구만이 인터넷 환경에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모바일인터넷 사용자 비중은 이미 세계 29위로 약진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택시운전사들은 이미 택시에 내장된 미터기가 아닌 모바일앱으로 택시요금을 계산하고 있다. 모바일 환경의 증가로 러시아 전자상거래 사이트 중 40%가 얀텍스머니, 웹머니, 키위 등의 온라인결제솔루션을 채택하고 있다.

러시아 자체의 IT경쟁력은 다국적 기업이 러시아 시장선점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이 기업시장에서 강세이지만 러시아 업체인 얀덱스(Yandex)가 검색 관련 시장에서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8월에도 시원한 러시아의 기후는 데이터센터 사업에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러시아는 2015년부터 자국민의 개인정보를 자국에 보관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빅데이터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혁신생태계

구소련 시대에 러시아는 노비스비르스크에 아까뎀고로독이란 연구단지를 건설한 바 있다. 이곳의 연구자들은 체제변혁기인 1990년대 중반부터 노보소트프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업을 설립했고, 이 지역에 1조원에 가까운 투자금을 유치하였다. 러시아벤처컴퍼니는 2006년 설립된 국영의 벤처캐피털 회사인데 그동안 200여개 회사에 3,000억원이상을 투자해왔다.

러시아는 2010년 모스크바 인근에 실리콘밸리라고도 할 수 있는 스콜코보 혁신센터를 건설하여 국가적인 기술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스콜코보의 주력분야는 에너지, 우주, 핵, 의료바이오, IT이다. 현재 이 클러스트는 노키아, 지멘스, 에릭슨, 알스톰 등의 기업과 이스라엘의 아리엘 대학교와 협력하고 있다. 러시아가 2015년 설계한 ‘국가기술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위하여 투자하는 금액도 년간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광활한 영토로 인하여 러시아의 주요 IT기업은 아직 예까떼린부르끄나 까잔, 쌍뜨 뻬떼르부르끄 등에 편재되어 있고, 아직도 광활한 지역은 적절히 개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첼라빈스끄 등 러시아의 여러 주정부는 다수의 국가에서 외자유치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는 일부 한국기업들도 부응하고 있다.

한편 지난 7일 한국이 북한의 동의로 동유럽권이 주도하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한 후 한국의 철도망을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철도(TSR)과 연결하려는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관광 수입을 바라는 북한은 이미 원산에 5성호텔과 카지노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철도로 한국에서 유럽으로 콘테이너를 운송하면 해상보다는 16일 이상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한국기업은 년간 800억원 정도의 운송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정부는 건강검진, 원격의료 분야에서도 러시아와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있는 다수의 종합병원에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환자들을 위하여 러시아어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러시아는 BRICs로 대변되는 유망한 신흥경제성장 국가이다. 광활한 영토, 풍부한 지하자원과 1억4천명에 달하는 소비자들이 한국기업을 유혹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 IT제품이 이미 최상위 품질로 인식되고 있다. 진행중인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기업들이 이러한 점을 이용하면 러시아시장을 유라시아 공략의 교두보로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정현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 (주)명정보기술 산호세법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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