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감세 법안 통과 이후, 미국 대기업들이 임금 인상 계획을 줄지어 발표하고 있다. <사진=CNN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 인하 결정 이후, 미국 기업들이 앞다투어 임금 인상과 보너스 지급 계획을 발표하며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은 예상대로의 낙수효과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 언론들은 정책 효과에 대해서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미 상원은 지난해 12월 2일(현지시간) 법인세를 35%에서 20%로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 감세 법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법인세 인하를 통해 미국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임금 인상 등의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 통과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 다수의 미국 기업들은 임금 인상을 발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화답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드럭스토어 CVS는 지난 10일, 오는 4월부터 임금을 시간당 11달러로 인상하고 정규직 근로자를 위해 4주간의 육아휴가프로그램도 신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유통체인 월마트도 시급을 11달러로 인상하고 최대 1000달러의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임직원 12만명에게 각각 25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밖에도 AT&T, 월트디즈니, 스타벅스 등의 대기업들이 연이어 임금 인상과 보너스 지급 계획을 공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실물경제학회(NABE)가 119명의 기업인에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한 기업 중 48%가 최근 3개월간 임금을 인상했다고 대답했다. 향후 임금을 인상하겠다고 답한 기업도 58%에 달했다. 결국 법인세 인하로 자금 여유가 생긴 기업들이 그동안 정체된 임금을 인상하며 근로자들과 혜택을 나누고 있다는 것. 설문조사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낙수효과’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임금 인상은 법인세 인하의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이처럼 트럼프 정부가 오랜만에 원하던 정책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미국 언론들은 아직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부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듯이 미국 근로자들도 감세 정책의 수혜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부정적 전망의 주된 이유는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로 생긴 여유 자금을 임금 인상보다는 자사주 매입(바이백)에 쓸 것이라는 점이다. 국제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300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8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응답한 기업 중 임금 인상을 고려중인 것은 13% 뿐이었다. 반면 43%의 기업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출을 통해 주주에게 혜택을 돌려주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미국 소비자단체 ‘세금공정성을 위한 미국인’(Americans for Tax Fairness)의 29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12월부터 20개의 미국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약 1000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 유통량을 줄여 주가를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이 확대되면서 주주들의 이익도 더욱 늘어나게 된다. 현재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열풍이 지속된다면,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결국 민주당의 지적처럼 ‘주주 배불리기’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CNBC가 지난 1월30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감세 법안 통과 후 임금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12%에 불과했다. 반면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출은 36%로 가장 많았다. <사진=CNBC 홈페이지 캡처>

또한 기업들이 계속해서 자사주 매입에 나서게 될 경우 임금 상승의 동력도 현저하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로이터 통신의 지난 1월29일 보도에 따르면, 5254명의 미국 근로자에게 물어본 결과 임금이 인상됐거나 보너스를 지급받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불과 2%였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27일 사설에서 감세 정책은 연방재정에 부담만 늘릴 뿐, 실질적인 임금 인상 효과는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어 미국 근로자에게 혜택을 주려면 중산층 감세나 저소득층 소득공제 확대가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계의 큰 손들에게 수표를 써주고 미래 세대의 장부에 달아놓은 격”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인터넷매체 바이스(VICE)는 임금뿐만 아니라 신규 투자나 고용 효과도 확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드렉셀대학의 일라이저 피치 교수는 지난 3일 바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기업의 공급이 이미 시장 수요를 다 만족시키고 있었던 상황”이라며 추가 수요가 없는 한 법인세가 줄어들더라도 추가 고용이나 신규투자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치 교수는 이어 “(제조업) 노동은 숙련노동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의 것”이라며 “(법인세 인하로 인해) 고용이 늘더라도 블루칼라 노동자나 4년제 대학 졸업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제학자들은 아직까지 트럼프 감세 정책의 효과를 재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법인세 인하의 혜택이 어떤 형태로든 근로자들에게도 주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혜택의 크기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눈길을 보이고 있다. 만약 감세 정책의 체감 효과가 미진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이라면, 임금 상승과 고용 확대로 지지율 상승을 노린 트럼프 대통령의 노림수도 엇나가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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