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며 유례없는 호황을 이어간 조선업계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불황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조선협회가 지난달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의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량 기준 35%의 점유율을 기록해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지만 수주 금액은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2009년과 2010년엔 저가 선박을 대량 수주한 중국에 1위 자리를 넘겨준데 이어, 지난해에는 선박 수출 부문에서 수년 간 유지해온 1위 자리를 중국에 빼앗겼다.

조선산업은 2008년 수출액 431억 달러로 국내 총 수출액의 10%를 넘어서며 자동차, 반도체를 제치고 처음으로 수출 1위에 등극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외화벌이와 고용창출을 책임져 온 우리나라의 대표 효자산업이라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경기불황과 더불어 '젊은 피'로 무장한 중국 조선업체들이 턱밑까지 추격해 오면서 한국 조선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이하며 인력 고령화에 대한 우려가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령화'에 대한 높아진 위기의식은 일본의 사례에서 출발했다. 지난 1960~1970년대만 해도 전세계 조선시장을 호령하던 일본이 1990년대 들어 인력자체가 고령화되면서 세계적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만큼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일 안현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뉴시스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국민연금공단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후원한 제1회 뉴시스 특강 '100세 시대의 산업변화-일본서 배운다'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일본의 핵심 성장동력이었던 제조업이 무너지기 시작한 대표적 원인 중 하나로 '고령화'를 꼽았다.

안 부회장은 "일본의 완성품 분야에서 가장 먼저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게 조선업"이라며 "(일본에서)조선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1위로 올라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조선산업의 평균 연령이 굉장히 고령화됐다"며 "경제 및 산업 분야에서 고령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 '빅3' 평균연령 43세…정년 58~60세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체의 생산직 평균연령은 2002년 40.3세에서 2005년 41.7세, 2007년 42세, 2010년 42.3세, 2012년 43.3세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업체별로 보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 '빅3'의 생산직 평균연령은 43.1세로 불혹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약 3세 정도 높아진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이 45.8세로 가장 높았고 이어 현대중공업(45.7세), 삼성중공업(37.9세) 순이다. 약 10년 전인 2002년 말 현대중공업이 43세, 삼성중공업 35세, 대우조선 42세였던 것에 비해 갈수록 고령화하는 추세다.

전체 근로자 평균연령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각각 43.7세, 41.3세로 40대를 훌쩍 넘겼다. 1990년대 중반 신입 직원을 대거 충원한 삼성중공업만이 36.4세로 가장 젊었다.

이는 전체 근로자 평균 연령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로, 최근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자 평균 연령은 39.6세다.

조선업계가 대표적인 고령화 산업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높은 '연봉'을 들 수 있다. 강경 노조로 중장년 인력의 퇴직 유도가 어렵다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조선업체의 생산직 평균 근속연수는 18년 안팎, 정년은 58~60세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2011년 말 평균 연봉은 7830만원. 삼성중공업은 7600만원, 대우조선해양은 5600만 수준이다. 3사 모두 공개를 꺼리고 있는 생산직 직원들의 경우 야근 등 각종 수당을 고려하면 8000만원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전반적인 사회구조 이해해야…고령화 문제 아냐"

인력 고령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생산성과 인건비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반면, 기업의 입장에선 고임금에 따른 비용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인원이 2만6537명으로 가장 많은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3분기까지 급여 지출액은 1조4272억원으로 2010년 대비 19.2% 증가했다. 삼성중공업의 급여 지출액은 지난해 3분기까지 총 7054억원으로 10%, 대우조선해양은 7134억원으로 7.9% 늘었다.

반면 지난달 클락슨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빅3의 지난해 수주잔량이 전년 대비 각각 20% 이상 줄어들었다.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량은 641만1000CGT(126척)로 글로벌 1위 자리를 유지했으나 전년 대비 20.4% 줄었다. 대우조선해양(538만5000CGT, 105척)도 23.4%, 현대중공업 역시 수주잔량이 514만4000CGT(112척, 군산조선소 포함)로 전년 대비 20.1% 감소했다.

하지만 조선업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인력 고령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업 기술을 익히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의 나이에 이르러야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생산직군의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인 것은 맞지만 조선업의 특성상 숙련된 인력들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며 "또 과거와는 달리 조선소 현장이 첨단화되면서 20대에 비해 40대가 생산성이 떨어진다거나 산재위험이 더 크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0세 시대로 접어든 현 시점에서 이제는 43세를 과연 고령화라고 봐야하는지도 의문"이라며 "10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사회구조에서 더 이상 나이가 조선업의 경쟁력을 잡아먹는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홍성인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조선업계 평균연령이 전체 제조업보다는 높지만 50세를 넘긴 일본보다는 많이 낮은 수준"이라며 "45세 정도면 축적된 노하우나 경험에서는 아직은 현장에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연령대"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5년 정도 후 평균 연령이 50세를 넘어서면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고령화로 인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며 "먼 미래를 내다보면 고령화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지금은 수요가 걱정스러운 상황이지 고령화 자체가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인구의 전반적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당분간은 중장년층 인력들을 중심으로 현장이 돌아갈 수 밖에 없다"며 "재고용이나 기능전수, 인재육성 지원 등 숙련된 기술직들의 노하우가 제대로 전수되도록 하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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