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오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딜링룸(dealing room · 매매 및 거래전용 사무실)'에서 대기업 A사와 연결된 핫라인 전화를 받은 한 기업담당 딜러(corporate-dealer)가 "250 솔드(sold ·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겠다는 주문)"를 외쳤다. '250 솔드'란 2억5000만 달러(1개=100만 달러)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주문을 처리하는 인터뱅크(inter-bank)가 곧바로 대꾸했다. "9.1에 던(done)" 기업이 가진 2억5000만 달러를 받고 은행은 2722억7500만원(2억5000만 달러X1089.1원)을 내주는 거래가 성립됐다.

주문을 받아 체결까지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날 하루에만 수백 건의 '던'이 이뤄졌다.

달러당 1089.1원이라는 교환 비율은 은행간 외환시장에서 매도측과 매수측의 가격이 맞으면 결정된다.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원·달러 환율은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엔 떨어진다.

한 순간의 판단이 적게는 수 백만원 많게는 수 억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딜링룸은 초긴장 상태다.

특히 원화값 절상 속도가 가팔랐던 최근 며칠 간 딜러들도 죽을 맛이었다. 이건희 트레이딩부 FX딜러(과장)는 "역외매수가 나와 분위기가 반등되고, 기술적으로 추가 상승을 시도했을 것이라 생각 못한 딜러들이 꽤 됐다.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많은 딜러들이 (시장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집을 부렸던 딜러라면 적잖은 손실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10원 넘게 환율이 요동쳤던 지난달 28~29일을 돌이켜 보면서는 "피가 마를 듯한 전쟁을 치르고 나면 몸살이 다 난다"고 전했다.

개별 딜러에게는 일중 손절매(Stop-Loss) 한도가 정해져 있다. 변동성이 심할 때는 은행의 규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손절매하는 경우가 생긴다. 반복해서 손해를 내면 딜링룸에서 퇴출된다.

하지만 지난해 말과 같이 변동성이 온데 간 데 없던 장세도 딜러들에겐 탐탁치 않다고 말한다. 이 과장은 "작년에는 (외환시장이) 너무 정체돼 있었다. 원화 강세가 지속되다보니 별다른 반등이 없었고, 딜러들에게 필요한 변동성마저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외환은행 딜링룸에는 외환·파생상품영업, fX 딜러 등은 총 51명이 근무한다. 이는 각 부서장 3명을 제외한 숫자다. 발령을 통해 언제든지 딜러 업무가 가능한 직원까지 포함하면 100여명에 달한다. 인터뱅크 비율이 은행간 거래딜러보다 2배 정도 많다. 외환은행 딜러가 자기 판단 아래 보유할 수 있는 달러의 한도는 일평균 2억 달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간 외환거래 규모는 일평균 215억9000만 달러로 전년대비 1.4% 증가했다. 상품별로는 외환스와프가 109억 달러로 가장 많았다. 현물환은 91억2000만 달러, 기타 파생상품은 14억5000만 달러였다.

'환율전쟁'을 최전방에서 느끼는 곳이 또 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중소기업 전담 딜링팀이다.

이날 오후 SC은행의 중소기업 전담 딜링룸에는 올해 사업계획 기준 환율을 확정해 놓은 기업들의 헤지 방법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었다. 중소기업 환업무를 딜링룸 내 5명의 전담 딜러가 맡도록 한 지 겨우 1주일 남짓이란다. 주거래 대상은 매출액 1000억원 미만의 수출입기업.

노현우 CB마켓세일즈팀 중소기업 딜링담당 과장은 "일평균 10건의 상담 신청이 접수되고 있고, 이중 3~4건 가량이 현장 방문을 원한다"면서 "10년 넘게 수출입을 해온 중소기업이라도 환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올 초 SC은행과 상담한 A사의 재무담당 상무는 "3개월 뒤에 500만 달러가 들어오는데 환율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을 대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면서 "상담 끝에 레인지 포워드(Range Forward) 상품에 가입했고, 환차손에 대한 시름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급격한 자금 유출입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말아야 한다고 딜러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딜러는 "시장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의 당국의 계산된 개입은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앞으로도 글로벌 유동성이 핫머니(투기자본)로 이동하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며 "과도한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완급 조절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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