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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근친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법조계는 물론 국민의 관심이 모여 있다. 지난 2022년 헌법재판소가 8촌 이내 혈족의 근친혼을 혼인무효 사유로 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내렸다. 개정시한은 2024년 12월 31일로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 민법은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다. 8촌 이내의 혈족이라 함은 자연· 법정(양부모계의 혈족)·부계·모계·직계·방계혈족이 모두 포함된다. 설사 혼인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는 수리되지 않으며, 설령 수리되었다 하더라도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은 무효이므로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한다.

헌재 결정의 발단이 된 사건은 2017년 소아과 의사 A씨가 6촌 여동생 B씨에게 제기한 혼인무효 소송이다. A씨와 B씨는 6촌 사이인 걸 알면서도 2011년부터 미국에서 동거하며 6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2016년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A씨가 변심해 ‘8촌 이내 근친혼은 혼인무효’라는 법률을 악용해 B씨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B씨는 “사회적 약자인 나를 상대로 A씨가 축출이혼을 시도했다”고 항의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혼인을 무효로 판결했다. 이에 2018년 B씨는 8촌 이내 금혼 및 혼인무효 조항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 사건을 다룬 헌재는 ‘8촌 이내 혼인을 금한다’는 민법 809조1항은 합헌이라면서도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정한 민법 815조2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즉, 8촌 이내 혈족 간의 결혼을 금지한 건 옳지만, 이미 한 결혼을 국가나 제3자의 목소리에 따라 일괄적으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치는 것(무효)은 과하다는 취지다. 

법률에 의해 혼인무효가 되면 혼인 이력 자체가 남지 않기 때문에 상속·재산분할 등 ‘혼인취소’라면 가능한 법적인 보호조치들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흔히 가까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주된 이유로 유전학적인 근거를 들곤 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4촌을 넘어선 관계에서 근친혼과 유전병의 연관성은 희박해지며, 현대의학에서 문제 되는 복합적인 성인병 질환이 근친혼과 관련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법 개정을 위해 법무부 장관 산하 가족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개정을 준비해왔다. 특위는 지난해 근친혼 범위를 현행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완화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자 성균관과 전국 유림에서는 “가족을 파괴하는 행위다. 개족보를 양산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사진-근친혼 금지범위, 자료-현소혜, “현행 민법상 근친혼 제도의 위헌성“]
[사진-근친혼 금지범위, 자료-현소혜, “현행 민법상 근친혼 제도의 위헌성“]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광범위하게 근친혼을 금지하는 편이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태국 등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프랑스·영국·미국 등은 여기에 숙질까지를 금혼 범위로 정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도 3~4촌까지로 우리나라보다 좁다. 8촌이내 혈족으로 금혼범위를 정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북한 정도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 배인구 변호사는 “서로 성도 다르고 부모님끼리도 전혀 모르고 평생 교류 없이 살다가 상대방과 8촌 지간인 걸 모르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시대인 만큼 ‘8촌이 최소 단위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시점은 됐다”고 말했다.

[사진-혼인신고서, 출처-대한민국법원 전자민원센터]
[사진-혼인신고서, 출처-대한민국법원 전자민원센터]

8촌 사이임을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다는 현실론도 등장한다. 혼인신고서의 근친혼 여부에 대해 공무원은 신고자의 의사밖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 법원행정처는 “당사자가 혼인신고서에 ‘8촌 이내에 해당된다’에 ‘예’ 표시를 하거나, 가족관계등록부 등으로 확인되지 않는 이상 공무원이 근친혼 해당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답한다.

가족관계등록부로 확인되는 촌수는 부모와 자녀 등 3대까지다. 8촌 여부를 알려면 부모, 조부모, 증조부, 고조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모두 뗀 뒤 세대별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이를 두고 헌법재판관 4인은 “친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신분공시제도가 없다”고 지적키도 했다.

그러나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위는 근친혼 범위를 축소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특위는 근친혼을 ‘무효’로 규정한 민법 조항을 ‘취소’로 바꾸는 방안을 유력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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